청량한 표지의 ‘여름어 사전’을 책상 위에 두고 있다. 내용도 초록색으로 인쇄되어 읽고만 있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목차에는 157개의 여름 관련 낱말이 빼곡하다. 이 낱말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던 계절을 더 좋아하게 된다. 뭉게구름, 빙수, 손차양, 오이냉국, 화채…. 여름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나 애니메이션들이 우리에게 남긴 쨍하고 투명한 잔상을 이 여름어들이 환기시킨다.
나는 여름마다 골똘해진다. 이 징글징글한 여름을 잘 건너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동원한다. 어떤 때는 집안 습기와 거의 사투를 벌이듯 할 때도 있고, 모기와의 전쟁을 펼칠 때도 있고, 더위를 먹고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을 가눌 힘을 잃기도 한다. 폭우가 쏟아지면 비 피해를 입은 지역의 참상을 보며 애를 태운다. 수마가 할퀴고 갔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의 피해들이다.
‘여름어 사전’도 폭우, 모기, 눅진하다, 냉방병 등 “만나고 싶지 않은 여름의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함하고 있다. 모든 계절의 단장점 중에서 여름이야말로 극명한데, 치명적인 단점을 여름은 우리로 하여금 망각하게 만드는 신묘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여름이 다 가고 나면 이조차 뜨거웠으나 서늘하게 식은 대리석 의자처럼 반듯하고 반질반질한 기억으로 남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행여 시각의 우세함 때문일까. 쉰내와 뜨거운 온도와 끈적한 땀과 땀냄새 같은 다른 감각은 잊히고 이미지만 우리에게 남아서일까.
언젠가부터 서점가는 여름마다 ‘여름’이 등장하는 제목의 시집들이 조명받았다. 여름이 끝나는 종지부처럼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릴 때, 모두들 또다시 “여름이었다”로 끝나는 추억놀이를 할 것이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