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후반 북동항로 처음 개척
북극해 중심 새 항로 가능성도 확인
최근 안개·폭풍 늘고 해빙예측 난항
항로 활용도 결국 기후변화 손 안에
북극해 중심 새 항로 가능성도 확인
최근 안개·폭풍 늘고 해빙예측 난항
항로 활용도 결국 기후변화 손 안에
대항해 시대(15세기 말~17세기)에 중국 등 동양은 유럽의 경제적 목표지였다.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에 진입하거나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찾고자 했던 주요 이유가 동양에 이르는 무역로 개척이었다는 의미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 해양을 장악하면서 북유럽 국가들은 동양으로 가는 다른 길을 찾으려 얼음 가득 찬 북쪽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지리학자들은 북유럽에서 중국까지 가는 데 두 방법을 추측했다. 하나는 아시아 북쪽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북동항로, 다른 하나는 아메리카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는 북서항로였다.
그러나 항로를 찾는 꿈은 늘 얼음 장벽 앞에서 좌절됐다. 탐험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북동항로를 항해하려 한 첫 시도는 노르웨이 동쪽 콜라반도에서 실패로 끝났으며, 북서항로를 찾고자 한 항해들은 허드슨만과 그린란드 북서쪽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탐험대가 실종되거나 바다와 만, 해협에 자신들과 선박의 이름을 남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200여 년간 반복된 실패 끝에 19세기 후반이 돼서야 북유럽에서 출발해 베링해협에 이르는 항해의 성공 소식을 듣게 된다.
북동항로를 통과한 최초의 항해는 스웨덴의 지질학자 아돌프 에릭 노르덴스키올드가 이끈 베가호 탐험(1878∼1880)이었다. 1878년 6월 스웨덴에서 출항한 증기선 베가호는 이전에 누구도 항해한 적 없던 얼음 지역을 통과해 9월 말 동부 시베리아 연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베가호는 베링해협을 앞에 두고 겨울 얼음에 갇혀 10개월간 정체됐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 이듬해 7월, 항해를 재개한 지 이틀 만에 베링해협을 통과함으로써 북동항로 항해에 성공했다. 정체 기간에는 지리, 기상, 생물 등 과학 조사와 동시베리아 축치족 문화에 대한 소중한 기록도 남겼다. 이후 베가호는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8개월간의 귀환 항해 끝에 스톡홀름에 도착함으로써 여정을 마쳤다. 이 항해는 유라시아 대륙을 일주한 최초의 항해로도 기록돼 있다.
한편, 북서항로를 최초로 완주한 항해는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에 의해 이뤄졌다. 1903년 6월, 탐험대를 태운 범선 요아호는 노르웨이를 출발해 그린란드 서쪽과 캐나다 북극 해안을 따라 복잡한 해협들을 항해했다. 10월 초, 요아호는 캐나다 북극 연안 중간 지점에서 겨울 얼음에 갇히게 됐고, 탐험대는 이곳에서 2년을 머물며 이누이트족으로부터 생존 기술을 배우고, 기상 및 자기 관측 등 다양한 과학 연구를 수행했다. 1906년 8월 말, 베링해협의 알래스카 놈(Norm)에 이르면서 북서항로 항해를 마쳤다.
노르덴스키올드와 아문센의 항해는 북극항로 개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두 탐험은 과학 관측과 원주민 문화 연구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이는 유럽과 동양을 잇는 항로 탐험이 대항해 시대와 달리 경제적 목적을 넘어 과학과 문화 조사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북극항로는 탐험뿐 아니라 과학 연구를 통해서도 그 의미가 확장돼 온 것이다.
오늘날 북극은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대륙 연안에 인접한 해역을 넘어 북극 전역이 복합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됐다. 그중 하나는 북극해 중심부를 횡단하는 항로의 가능성이다. 지금은 연중 얼음으로 덮인 이 잠재적인 항로는 동부시베리아에서 시작해 북극을 지나 그린란드 동쪽으로 이어지는 해류의 경로와 일치한다. 이 해류는 해빙 이동을 조절해 연안 해빙 분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북동항로 개방 시기에 중요한 변수로도 작용한다. 이 해류의 존재는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의 프람호 탐험(1893∼1896)에서 처음 확인됐고, 최근에는 이를 계승한 현대적 표류 탐험이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연중 북극 중심부 과학 조사인 모자익(MOSAiC) 탐험(2019년 9월∼2020년 10월)이다. 북극 해빙과 기후 변화를 보다 잘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목적이었다. 독일의 쇄빙연구선 폴라슈테른(Polarstern)호가 의도적으로 얼음에 갇혀 1년간 표류하며 대기, 해빙, 해양을 종합적으로 관측했다. 탐험대원 442명의 교대와 물자 보급을 위해 러시아 쇄빙연구선 등 6척이 지원됐고, 20개국 80개 이상의 기관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북극 탐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탐험에 해당한다. 이 탐험에서 수집된 자료와 분석 결과는 기후 모델 개선에 중요한 기반이 되고, 북극 해빙 변화의 특성과 북극항로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이제 새로운 경제적 기회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항로 이용의 가능성은 커졌지만 동시에 많은 현실적 장애 요소를 안고 있다. 북극을 둘러싼 해역 관할권 충돌과 군사력 강화 같은 지정학적 긴장에서부터 인프라와 경제성 부족, 그리고 환경 오염 등이 지적되고 있다. 기상과 자연환경에 기인한 위험 또한 가볍지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북극은 점점 안개 짙은 바다로 변하고 있으며, 폭풍 발달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해빙 감소에 따라 해양에서 대기로 열 및 수분 공급이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러한 안개와 폭풍은 북극항로의 개방성과 운항의 안정성 모두에 위협이 된다. 여기에 해빙 예측의 불확실성도 있는 만큼 북극항로 활용이 결국 기후 변화 틀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모자익 탐험을 이끌었던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의 마르쿠스 렉스 교수는 “여름철 북극 해빙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뢰밭에서 첫 번째 지뢰를 밟는 것과 같고, 이번 탐험에서 이미 지뢰를 밟고 폭발이 시작되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다. 북극해는 분명히 새로운 경제적 기회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지구의 기후 위기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경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