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모, 테, 나, 시.” 일본 후지TV 아나운서 출신으로 도쿄올림픽 유치 위원이던 다키가와 크리스텔은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우리는 여러분을 특별하게 환영하려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일본어가 있다”며 ‘오모테나시’를 소개했다. 오모테나시는 접대를 뜻하는 ‘모테나시(もてなし)’에 정중함을 더하는 표현으로 ‘오(お)’를 붙여 최고의 환대를 약속하는 말이다. 왼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오모테나시를 한 음절씩 또박또박하게 말한 다키가와의 연설은 IOC 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일본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했다.
일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림픽을 예정보다 1년 늦은 2021년에 개최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 국경을 다시 개방했을 땐 엔저 효과까지 누리면서 매월 300만명 넘는 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다키가와의 ‘오모테나시’가 겸연쩍게 2025년의 일본은 외국인에게 ‘나가라’고 외친다. 올해 들어 일본에서 높아진 외국인 배척 정서는 ‘오버 투어리즘’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지금 일본 사회의 외국인 배척 정서는 목을 조여 오는 생활고로 집단적 불안감에 휩싸여 공격할 대상을 찾은 쪽에 가깝다.
지난 6월 도쿄 외곽 이타바시구의 아파트 임대료가 2.5배나 올라 기존 거주자들이 퇴거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는 정치권까지 가세한 논쟁을 불러왔는데, 결국 외국인 증가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타바시구에 외국인 거주자가 늘었고, 남은 주택도 외국인 대여용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집값 상승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쌀 부족 현상의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소셜미디어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밥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이 공감을 얻는다.
극우 성향의 군소 정당인 참정당은 일본인의 이런 불안감을 파고들었다. 지난달 20일 참의원 선거에서 기존 2석을 15석으로 대폭 늘린 참정당은 라인·엑스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외국인 배척 정서를 응집하며 지지 기반을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유럽 극우정당들의 구호가 그랬던 것처럼 참정당의 ‘일본인 퍼스트(우선주의)’도 소셜미디어에서 강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참정당 주도의 ‘외국인 규제’ 키워드가 참의원 선거 2개월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쌀값 감세 복지 같은 주요 정당의 공약보다 더 자주 언급됐다”고 분석했다.
한때 우익 활동가였지만 지금은 빈곤과 양극화 퇴치를 위해 저술 활동을 펼치는 일본 작가 아마미야 가린은 지난달 22일 마이니치신문 기고에서 참정당의 약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슈퍼마켓에서 쌀이 사라질 때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였고,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싼 물건을 ‘싸다, 싸다’ 하며 기분 좋게 사 갔다. 경제대국이던 일본이 급속하게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모두가 날마다 체감했다. 참정당이 외국인을 표적으로 삼았을 때 지지자들은 ‘드디어 우리의 적을 찾았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들에게서 오랜 불안감의 원인을 찾게 된 기쁨이 느껴졌다.”
‘일본인 퍼스트’는 힘이 빠진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린 불안감의 역설이다. 일본이 ‘오모테나시’를 자랑하는 날이 돌아올까. 정치권부터 달라져야 할 텐데 지금은 참정당을 따라하기에 바쁘다. 집권 자민당은 ‘불법 외국인 제로’를 구호로 채택했고 국민민주당은 외국인 토지 취득 규제법을 들고 나왔으며 일본유신회는 외국인 증가를 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