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태풍 때문에 우연히 만난 아웃리치팀이 교회를 정식으로 방문했다. 우리 가족이 일본 땅에 오고 처음 온 선교팀이었다. 팀원들은 “우리(조선)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동행하길 원했다. 조선학교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던 우리 부부는 잠시 망설였지만, 장학금을 주는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함께 갔다.
살고 있던 도요타 옆 도요하시에 있는 조선학교였다. 학교에서 차량으로 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일본의 신시로교회가 있었다. 한적한 시골 교회인데도 기독교 출판사까지 함께 하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교회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이 조국 해방으로 돌아간 뒤 남은 집터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했다. 그래서 타키모토 준 담임 목사님은 “분단된 조선에 늘 빚진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일본 교회지만 가까이에 있는 조선학교에 마음을 열고 기도하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훗날 우리 부부가 재일 조선인들을 위해 오사카로 간다고 했을 때 기뻐하시며 축복 기도도 해주셨다.
신시로교회에서 함께 성찬 예배를 드린 후 조선학교로 갔다. 운동장에서 우리를 맞은 아이들은 한국말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조선말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또박또박하고 씩씩한 말투였다.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았다. 길이가 짧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선생님들이 있었다. 선생님들도 얼굴이 까맸다. 운동장을 지나 복도에 들어서니 ‘변소’라고 쓰인 글귀에 눈길이 멈췄다. ‘세상에…. 이런 학교가 있구나.’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다른 시간대에 온 듯했다. 주님의 인도함으로 일본 속에 숨겨져 있는 조선인들을 얼떨결에 처음 만났다. ‘이들은 무엇이길래 어떻게 이렇게나 숨겨져 있을까’ 싶었다.
남자아이 한 명, 여자아이 한 명에게 졸업을 축하하며 장학금을 수여했다. 현지 목사가 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동행한 남편 이성로 목사가 두 아이에게 장학금을 전했다. 이 만남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인도하심이었다. 장학금을 받은 여자아이 이름이 ‘보람’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아이를 다시 만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열어 가신다.
태풍으로 만난 팀의 리더 목사님은 몇 년 후 우리 부부와 다시 만나, 그때 이후 이어진 일들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재일조선인을 품으셨군요. 많은 분에게 권했지만 모두 거절하셨거든요.” 태풍이 가져다준 것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였다.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 104:4)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