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고립의 시대, 다시 연결의 사회로

입력 2025-08-04 00:33

OECD 자살률 여전히 1위
연결 실패 보여주는 것

고립은 현대 사회 복합적 결과
초연결 사회일수록 심화돼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회복탄력성 지닌 사회야말로
자살공화국서 벗어날 수 있어

대통령의 관심 표명과 함께 자살과 고립 문제가 다시 사회적 어젠다로 호명되었다. 마침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20년 넘게 자살률 OECD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3명으로 2013년(28.5명)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자살은 곧 연결의 실패이며, 사회가 한 사람을 끝내 붙잡아주지 못했다는 공동체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생을 거두기까지는 오랜 침묵의 시간이 있다. 그 안에는 누구도 듣지 못했던 삶의 균열, 단절된 관계, 존재의 소외가 켜켜이 쌓여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 퍼진 고립은 단순히 ‘혼자 있음’이라는 표면적 상태를 넘어 자기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자기소외된 삶으로 확장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 조용한 사직과 빠른 이직, 중장년 남성의 고립사, 독박 돌봄에 침묵하는 여성들, 무연고 노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금 ‘명시된 고립’보다 훨씬 깊고 넓은 심리적 퇴장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은 무기력을 일상화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해한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 무해함은 결국 무의미함으로 이어지고, 타인과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지며 점차 사라진다.

자살은 극단적으로 표출된 무력감의 표현이며, 고립된 일상의 끝에서 일어난다. 청년, 독거노인 등 특정 집단에서 두드러지는 자살과 고립의 교차는 단순한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회복탄력성의 결핍, 관계망 해체, 돌봄의 사회화 실패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이 문제를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같은 개인의 병리로 환원해 왔다. 고위험군 선별, 단기 심리상담 중심의 정책은 필수적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고립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긴장이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다. 과도한 경쟁, 단절된 일상,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사적 돌봄 책임, 낙오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낙인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고립 가능성’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의 저자 노리나 허츠는 초연결 사회일수록 고립이 심화된다는 역설을 지적한다. 고립은 공동체 붕괴를 가속화하고, 생존주의적 이기심과 정치적 극단주의를 부추긴다. 다시 말해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위험이다. 심리적 고립은 단지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표현할 언어조차 잃은 상태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어떻게 청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그들이 안심하고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첫째, 존재 자체가 승인되는 안전한 사회, 곧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는 제도보다 감정 위에 세워진다. 실패해도 낙오자가 되지 않고, 혼자 있어도 낙인찍히지 않으며, 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정서적 기반과 관계적 안전망을 통해 자기를 돌보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그 출발점이다.

둘째, 고립을 사후 처치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사회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청년의 취업 실패, 중년의 사업 실패와 돌봄 부담, 노인의 빈곤과 상실은 단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의 반복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위험 감지 시스템, 커뮤니티 기반 관계회복 프로젝트, 사회적 일자리와 동네 단위 거점 공간을 포함한 실질적 개입 정책이 요구된다.

셋째, 무해한 인간이 되려는 자기검열은 경계해야 한다.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사회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말할 수 있는 언어와 조건을 갖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도시설계, 노동문화, 기술 플랫폼 설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과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연결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실패와 단절의 고비에서 다시 품어줄 수 있는 공동체,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지닌 사회야말로 고립의 시대를 넘어설 지속 가능한 해법이며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멈출 근본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
사회복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