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세는 타결됐지만, 숙제로 남은 ‘안보’

입력 2025-08-02 01:10 수정 2025-08-02 08:35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우리가 당초 원했던 ‘패키지 딜’은 관철되지 않았다. 통상과 안보를 함께 테이블에 올리는 방식을 미국이 거부하면서 방위비, 국방비, 주한미군, 북한 등의 이슈를 다룰 안보 협상이 숙제로 남았다. 둘을 분리해야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속내일 터라, 곧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만만찮은 ‘안보 청구서’가 제시될 수 있다.

관세 타결 직후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12·3 비상계엄 이후 공백 상태이던 대미 외교를 재개하는 자리였다.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고 긴밀한 대북 공조를 약속하며 공감대를 이뤘다. 주목할 부분은 “한·미 동맹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대목이었다. 미국이 말하는 ‘동맹 현대화’의 핵심은 한반도 방위와 북한 대응에 집중해온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에 활용토록 수정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중국의 대만 침공 억지를 최우선 과제로 명시한 국가방위전략지침을 공개한 뒤 미군 재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인 주한미군 역할 변경은 대북 억지력과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미묘한 사안이자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70년 넘게 유지돼온 한·미 동맹과 한반도 안보의 틀이 바뀌는 일이다.

회담 후 정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은 여러 요인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가 양국 안보 협상의 중요 의제임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가 이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여서 미국이 매우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미국이 중국과 싸우게 될 경우를 대비한 주한미군 역할 변경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개정, 미국의 전략 자산 배치, 주한미군의 구성과 무기체계 등 안보 협상의 많은 과제와 연관돼 있다. 한·미 동맹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이 동맹 현대화란 이름으로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도 이를 민감하게 주시할 것이다.

정부는 대북 억지력의 빈틈없는 확보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비대칭 전력을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동맹 현대화가 북핵 대응에 허점을 야기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여러 요구에 응하는 상황이 생길 테지만, 동시에 국익을 최대화할 협상 카드를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를 이재명 대통령과 외교안보 당국이 마주했다.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