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의 힘을 절감하는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게 전장에서다. 스페인 내전 당시 총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담은 ‘쓰러지는 병사’는 내전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베트남전 반전 여론을 부추긴 건 ‘베트콩 포로 처형’, ‘폭격을 피해 전라로 뛰어오는 소녀’의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1945년 미국 해병대가 일본군과의 전투 끝에 태평양 이오지마섬을 탈환한 뒤 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한 ‘이오지마 깃발’ 사진은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애국심을 끓게 만든다.
사진은 국가 간 관계 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폴란드는 전후 독일을 향한 반감이 심했다. 그런데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은 사진 때문이다. 한 매체는 이를 두고 “무릎 꿇은 이는 브란트 한 명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 전체”라고 묘사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맞이해 난항이 예상된 한·미 관세 협상이 나름 무난한 결과(관세 15% 합의)에 도달한 데에도 사진의 힘이 컸다고 한다. 미 측은 협상 초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때 우리 측이 제시한 게 2008년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100만 인파의 광우병 집회 사진이었다. 동맹 한국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지를 사진으로 알게 되자 미국은 압박을 거둬들였다.
재미있는 건 협상 결정권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사진의 대표적 수혜자란 점이다. 트럼프가 지난해 유세 현장에서 총기 피격 당시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사진으로 지지율이 급등했고 대통령 당선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이기에 광우병 사진 속 함의를 알게된 것 아닌가 싶다. 미 백악관이 1일 협상 타결 후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협상단의 엄지척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정권 초 다소 삐걱대는 느낌을 줬던 한·미 관계가 제자리를 찾았음을 보여줬다. 관세 협상의 시작과 끝을 사진이 웅변해주고 있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