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넉 달에 걸쳐 국가의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쳤던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이 유예 시한을 단 하루 앞두고 전격 타결됐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87조원)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실은 미국의 집요한 요구를 뚫고 비관세 장벽의 핵심 품목이었던 쌀과 소고기 시장 추가 개방도 막아냈다.
통상 부문과 별도로 한·미 양국은 국방비 및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등 외교·안보 분야는 2주 뒤 예고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 담판으로 매듭짓기로 했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31일 긴급 브리핑에서 “미국이 한국에 8월 1일부터 부과하기로 예고한 상호관세 25%는 15%로 낮아지며,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낮췄다”면서 “추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다른 나라 대비 불리하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관세 인하의 핵심 카드였던 대미 투자 펀드는 3500억 달러 규모로 조성된다. 이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업 분야 특화 펀드다.
정부는 앞서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과 비교해 우리가 선방했음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업 펀드 1500억 달러를 제외하면 우리의 투자펀드 규모는 2000억 달러로 일본(5500억 달러)의 36%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경쟁 품목인 자동차 관세를 일본과 같은 15%로 맞춘 것도 최악의 결과를 피한 것으로 본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부담이 컸던 쌀과 소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는 점도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김 실장은 “미국과 협의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식량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쌀과 쇠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8월 초 개최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SNS 트루스소셜에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며 이재명 대통령이 2주 내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한 국방비 증액 문제와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등 안보 사안 등은 정상 회동에서 담판짓게 된다. 또 3500억 달러 규모 펀드의 투자처 역시 이 자리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미국 관세를 주요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며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큰 산은 넘었지만 국제 통상질서 재편은 앞으로도 계속 가속화할 것이므로 국익 중심의 유연한 실용 외교를 통해 급변하는 대외 환경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승욱 윤예솔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