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시기를 ‘2주 내’로 밝히면서 첫 한·미 정상회담은 8월 중순 이전에 열릴 전망이다. 한·미 양국이 31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정상 간 회동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한 국방비 인상 문제와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굵직한 안보 이슈는 정상 간 담판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측에도 국내총생산(GDP) 5% 수준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요구에 부응하려면 매년 20% 이상 국방비를 인상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시절 한국을 괴롭혔던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개정 요구를 불쑥 꺼내 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주한미군을 투입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도 동맹 차원에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전폭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의 세부 내용을 확정하는 후속 논의도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 대미 투자의 수익 배분 구조 등 양국 간 설명이 다소 차이를 보였던 부분을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던 고정밀 지도 반출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등 디지털 규제 문제가 새로운 안건으로 거론될 수도 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미국 현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앞으로도 한국을 포함한 무역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미국의 철폐) 압박은 계속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안심할 상황은 아니며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시장 다변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호·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혜택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실효관세율은 0%대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EU와 같은 선상에서 대미 수출 경쟁을 벌이게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FTA라는 게 상당히 많이 흔들리고 각 나라 협상도 세계무역기구(WTO)나 FTA 체제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관세라는 소나기는 잘 피했지만 한·미 FTA라는 장기적 방패는 훼손됐다”며 “관세 인하라는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느라 FTA라는 최대 이점을 지키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정상회담과 추가 협의를 통해 ‘관세 분쟁’을 피하는 것도 관건이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과 협상을 체결한 일본과 EU는 모두 별도의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대미 투자 약속 등에 대한 추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미국과 세부 내역 조율과 단계별 이행안을 세우는 과정에서 승강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최승욱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