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 전도사가 환갑에 낳은 아이였다. “반듯한 벽돌집에서 살게 해달라”는 것이 소원인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은 아버지처럼 목회자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자가 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이끄심은 그가 원하던 것과 달랐다. 모든 진로가 막히고, 오직 목회의 길만 열렸다. 결국 목회자가 된 그는 청년세대 사역에 뜻을 품었다. 사역의 열매를 맛보던 그를 하나님은 다시 40년 넘는 전통의 교회로 보내 기성세대를 품게 하셨다.
장영환(48) 염광교회 목사의 이야기다. 그를 최근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교회에서 만났다.
염광교회는 오랜 전통의 은평교회에서 분립해 나온 성도들이 1981년 개척한 이후 지역의 중심 교회로 자리 잡았다. 교회 구성원 상당수는 30~40년 넘게 한 교회를 섬겨온 기성세대이고, 이북 출신도 많다. 자녀,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도 여럿이다. 장 목사는 “청년 사역을 오래 해 온 저였기에 2021년 교회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겉으로는 이 교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며 “하지만 과거 가난한 이북 출신 아버지와 함께 성장했던 제 개인사가 오히려 교회 성도들과의 정서적 연결고리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이어 “저의 어린 시절 가난과 방황, 가족사, 신앙의 전통까지 마치 퍼즐 조각처럼 하나님께서 맞춰 가시고 그의 손으로 빚어 가셨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목사에겐 목회자로서의 소명의식을 아로새기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고3 때 가난으로 모든 진로가 막혀 교실 한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던 어느 날 밤, 창밖의 은하수를 보여주신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는 말씀을 주셨다. 장 목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별들을 보여주신 하나님이 제게도 같은 말을 해주시는 것 같았다”며 “가난과 상처만 바라보다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런 나 역시 빚어가고 계신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7년 나이 아흔의 부친과 함께 이산가족 상봉을 했던 날도 기억한다. 6·25전쟁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정착한 그의 부친은 반세기가 지나 환갑이 넘은 딸과 상봉했다. 그 딸은 장 목사에게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불러주신 찬송가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장 목사는 “오랜 시간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억압해도 어린 가슴에 새겨진 말씀과 찬양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던 것”이라며 “제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명하게 새기는 기회가 됐고, 목회자의 길을 걷는 제게 하나님께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신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장 목사는 공군중앙교회, 강변교회, 부산 호산나교회 등지에서 다음세대 사역을 주로 맡았다. 청년이 가진 열정과 진취적인 성향이 잘 맞았다. 부흥도 함께 경험하면서 장 목사는 청년세대와 함께 ‘선교적 교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염광교회로 이끄셨다. 당시 교회는 안만길 원로목사의 뒤를 이어 교회에 변화를 가져올 목회자를 물색 중이었는데, 이북 출신 전도사를 부친으로 둔 장 목사가 청빙됐다.
장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교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주일 오후 예배를 소그룹 제자 훈련으로 대체했다. 엄숙한 전통 예배 형식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설교와 찬양이 바탕이 된, 열정 가득하고 생동적인 예배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장 목사의 말이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변화에는 희생이 필요한데,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어르신 성도들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장로님들이 제게 면담을 요청하셨어요. ‘혼나겠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우리가 부족해 목사님을 잘 못 따라가는 것 같다’고 하셨죠. 너무 인격적이던 그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장 목사는 이후 변화를 계속 추구하면서도 기성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소통하겠다고 결심했다.
장 목사는 ‘하이브리드 목회자’를 꿈꾼다. 유진소 호산나교회 목사가 그에게 지어준 이 명칭은 기성세대와 다음세대를 동시에 품고,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사역자란 의미다. 장 목사는 이 철학 아래 기성세대를 ‘믿음세대’로 부르고, 이들을 선교지에 파송하고 훈련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다음세대만이 아니라 믿음세대에도 투자해야 진짜 변화가 가능합니다. 어른이 변하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변하지 않아요. 장로님들을 선교지에 직접 모시고 가면 오히려 그분들이 더 감동하고 변화됩니다. 그런 변화가 자연스레 다음세대에 전수되는 거죠.”
염광교회는 예배·소그룹·훈련·가정·선교의 다섯 축을 중심으로 사역을 세우고 있다. 세대 통합을 위한 다양한 시도도 병행한다. 온 세대가 함께 선교지에 다녀오는 ‘행복한 동행’ 프로젝트는 교회의 대표 사역이다.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신앙의 뿌리를 단단히 내린 믿음세대가 있기 때문이죠.”
또 지역사회에 ‘빛이 되고 쉼이 되는 교회’란 비전을 세웠다. 교회 인근 산과 공원을 찾는 등산객을 위해 화장실을 개방하고, 반려견 주인들에게 배변 봉투를 나눠주는 등 일상의 선교에도 정성을 다한다. 20년 넘게 이어진 ‘염광아기학교’는 비신자 부모들도 참여하며 지역사회의 육아 공백을 메우고 있고, 비기독교인도 참여 가능한 영어성경학교(JEBS)는 지역사회에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창구가 된다.
장 목사는 “홍정길 목사님께서 ‘좋은 목사는 좋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해주신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며 “삶 속에서 ‘실천적 애씀’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