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초품아, 그리고 노품아

입력 2025-08-01 00:37

전북 남원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셨다. 전주 큰아버지, 부산 작은아버지, 성남 고모 댁에도 계셨다. 그중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곳은 우리 집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할머니가 방 앞까지 나와 반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머리를 하얗게 염색했을 때 할아버지가 살아온 줄 알았다며 농을 던지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가 살뜰히 챙겼지만, 어린 내 눈에도 그때의 할머니는 심심해보였다. 할머니가 쓰던 방문은 닫힌 적이 거의 없는데, 열린 문 사이로 볼 때마다 할머니는 누워 계셨다. 남원에선 거동이 불편해도 끊임없이 움직이던 할머니였다. 가끔 아파트 노인정에 가셨지만 이내 돌아오시곤 했다. 엄마 심부름으로 먹을 걸 들고 가보면 할머니는 무리에서 한 뼘 떨어져 계셨다. 계신 분들 모두 친절했지만 그 안에 녹아들기엔 환경 자체가 낯설었던 것 같다.

20년도 더 된 할머니와의 기억이 떠오른 건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갔을 때 단지 안에 있던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치원’이 들어선다는 얘길 들어서다. 노치원은 ‘노인 유치원’을 줄인 말이다. 어르신들이 낮 동안 머물며 돌봄을 받는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 저출생 고령화로 유치원이 노치원으로 바뀌는 사례가 늘고 있다더니 여기가 그곳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라 그런지 주변에 래핑한 노치원 차량도 꽤 보였다. 경로당은 가서 할 일이 마땅치 않고, 요양원은 집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통원이 가능한 노치원은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이런 시설이 집 앞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심심하고 단조로웠던 시간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노인을 위한 시설이 늘어난다는 건 한편으로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노치원 설립이 순항만 하는 건 또 아니다. 노인이건 장애인이건 약자를 위한 시설이 들어선다면 반대부터 하는 ‘님비’ 현상을 우리는 수차례 봐왔다.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도 노치원 갈등이 벌어졌다. 노치원을 포함한 재건축 사전기획안이 확정되자 일부 조합원이 혐오감이 들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시끌시끌했다. 단지 앞 현수막은 노골적이었다. 치매환자용 요양시설을 자진 유치했다며 (아파트가) 똥값이 됐다고 써 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를뿐더러 방향도 잘못됐다. 해당 단지에 들어서는 건 낮에만 하는 노치원, 즉 재가센터다. 약자를 위한 시설이 정말 집값을 떨어뜨릴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선 좋은 노인복지시설은 인근 집값을 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고령층 돌봄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고된 미래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돌파하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이면 고령자의 절반 이상이 1인 가구가 된다.

‘살던 곳에 살면서(Aging in place)’ 늙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아니라도 ‘살던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Aging in Community)’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3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87.2%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다. 또 건강이 나빠져 독립적 생활이 어려워지더라도 살던 곳에 살고 싶다는 이들이 48.9%나 됐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지금은 노치원 설립을 꺼린다지만 가까운 미래엔 노인시설을 갖춘 단지를 선호할 수도 있다. 단지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를 ‘초품아’라며 반기듯 노치원이 있는 아파트를 ‘노품아’라며 반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황인호 사회2부 차장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