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대화 상대가 꼭 사람인 것은 아니다. 대화형 인공지능(AI)이 친구의 자리를 대신한다. 요리 레시피를 묻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같이 재테크 계획을 세운다. AI가 여러 분야에서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덕분에 가끔은 대화방에서 철학적으로 깊은 토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성악설과 성무선악설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두고, 과연 인간 본성이 어떤지에 대해 몇 시간 토론하다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논거보다 대화형 AI의 논거가 훨씬 탄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처럼 인공지능을 친구 삼아 대화하는 게 요즘은 흔한 일인 것 같다. 비교적 젊은 세대인 학생들은 공부를 도와 달라 하고, 어르신들은 실생활 정보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 대화형 인공지능인 LLM(거대언어모델)에 궁극적인 목표 모델이 있다면 바로 인간에게 일대일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형 비서일 것이다. 만약 그보다 시간이 더 흘러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의 문턱에 선다면, 비서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한계를 허물어뜨리는 초지능을 가진 친구로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쉬지 않는다. 마케팅에서 광고 문구와 SNS 콘텐츠를 작성하고, 포스터를 그린다. 챗봇을 통해 정보 안내를 받으니 비대면 서비스업도 상당수 자동화로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방대한 법과 판례를 검색해서 검토하고 요약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하루에서 이미 생활 보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1957년 미국에서 처음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지 겨우 70년 남짓 되었다. 이 70년은 인류의 전체 역사 중 찰나 같은 순간에 불과한데,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그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이런 고민도 피어오른다. 과연 항공교통 관제 업무도 인간 대신 AI가 수행하는 날이 오게 될까?
우리 관제소에서는 AI가 관제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제사와 조종사의 음성 교신을 영어와 한글 텍스트로 변환하는 데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관제 교신은 관제사의 지시를 조종사가 복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변환한 텍스트에서 조종사의 복창이 관제사의 지시와 다르다면 그 부분을 노랗게 강조 표시해 준다. 출발이 임박한 항공편과 인천공항에 도착한 항공편의 탑승구 상황도 시간 맞춰 화면에 띄운다. 이동 중인 비행기가 보이도록 계류장의 실시간 전경을 화면에 띄우고, 비행기 사이의 거리를 계산해 충돌 경고를 보내는 기능도 개발돼 있다. 증강현실과 유사한 방식으로 화면에 보이는 비행기 위에 항공편 정보를 중첩해 표시하기도 한다.
실례에서 보듯이 AI가 관제사의 작업 부하를 줄이며 업무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AI 관제사가 직접 조종사와 실시간으로 교신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쏟아지는 정보에 우선순위를 매기며 관제하다가 갑자기 긴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비상 대처 지침은 파악하고 있겠지만, 관제 상황에 영향을 주는 다른 비정형적 변수들을 고려하기는 아직 멀었다. 예컨대 관제구역에 있는 다른 비행기의 움직임을 고려한 순서 설정, 조종사 교신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말투 등 비언어적 표현의 감지, 공항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과 의사소통까지 해내긴 어렵다. 직관과 경험에 의한 결정, 상황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가능한 인간을 완벽히 대체하기에는 AI에게 아직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결정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것도 인간 관제사 대체를 힘들게 만든다. AI는 인격 주체가 아닌 만큼 직접 한 관제 지시로 인한 책임을 묻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사건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는 이를 운용하는 인간이나 기관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AI가 항공 안전과 효율을 높이는 관제사의 보조로 사용되는 방향이 타당하다.
어느 산업 분야에서든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최종 결정권과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항공과 같이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AI를 이용하되 의존하거나 주체를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과 AI가 협업하며 관제탑 창 너머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