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해가 지며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가족들과 식탁에 모여 촛불을 켠다. 포도주잔을 놓고 축복의 문장을 낭독하면서 이따금 오래된 성가도 부른다. 창밖으로는 강물 너머로 오렌지빛 석양이 드리워지고 오후에 준비한 닭고기 수프, 약병아리 구이, 빵과 샐러드와 구운 채소를 저녁 식사로 내놓고 후식으로 사과를 깎는다. 한 주의 노동을 마무리하면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고 느슨한 대화를 이어간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와 친밀했던 유대인 랍비 아브라함 헤셸의 책 ‘안식’(복있는사람)에서 발견한 풍경이다. 딸 수재너 헤셸이 가족의 안식일 저녁을 기억하며 소개한 내용이다. 수재너는 “안식일이 되면 아버지는 평소에 읽던 것과는 다른 책들, 철학 서적이나 정치 서적 같은 책은 읽지 않고 대신 종교 문헌을 읽으셨다”고 했다. 가벼운 농담이 곁들여진 저녁 식사 이후엔 책 읽는 시간, 이때 랍비 헤셸은 히브리 종교 문헌들을 읽으며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리고 자신이 얼마나 종교적으로 고귀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랐는지 절절히 느꼈다고 딸은 회고한다.
랍비 헤셸은 책에서 안식일을 ‘시간 속의 궁전’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한 주의 엿새 동안은 이윤을 짜내려 세계와 씨름하지만, 일곱째 날에는 영혼 속에 심겨진 영원의 씨앗을 각별히 보살핀다고 말한다. “안식일 속에는 시간 속의 궁전을 지을 수 있는 영의 보석이 들어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을 닮은 것에 닿기를 갈망한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일곱째 날 쉬었는데 그냥 쉰 게 아니었다. 일곱째 날은 쉼으로써 평온과 고요, 평화와 휴식을 창조했다고 헤셸은 밝힌다.
미국 컬럼비아신학교의 구약학 명예교수를 역임한 월터 브루그만은 책 ‘안식일은 저항이다’(IVP)를 저술했다. 상품 생산과 대량 소비가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일을 내려놓고 편히 쉬는 일 자체가 저항이라고 말한다. 물건을 사고 만드는 것, 공간을 꾸미고 그 안에 자신을 갈아 넣느라고 시간을 무한정 허비하는 대신 일주일에 하루, 시간을 스스로 편집하며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기독교인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브루그만은 안식이 저항일 뿐 아니라 대안이기도 하다고 전한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구석구석 전해지는 광고들, 휴식 전체를 집어삼키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대신 나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생각하고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영혼을 위한 질문을 끄집어내자고 권한다. 기독교인에겐 이때 필요한 책이 성경이리라.
여름 휴가철을 보내며 공간이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되라. 안식을 통해 저항하고 대안을 모색하라는 지혜자들의 속삭임을 다시 떠올린다. 북적거리는 해변으로 가족과 함께 공간을 이동해 바가지 상술에 영혼까지 상처 입고 돌아오기 싫다면, 일곱째 날의 평온과 고요, 평화와 휴식을 창조한 그분의 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잘 쉬기 위해선 먼저 충분히 자야 한다. 푹 자고 낮잠을 자고 일찍 자고 늦잠을 자면서 먼저 과로로 피폐해진 몸을 돌본다. 미국 보스턴 알레데이아 교회를 담임하는 애덤 마브리 목사는 책 ‘잘 쉰다는 것’(좋은씨앗)을 통해 다윗에게도 잠이 그런 의미였다고 밝힌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마브리 목사는 살면서 한두 시간 홀로 앉아 신약 복음서 한 편을 통째로 읽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자문한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위대한 저자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어보고, 기도하며 산책을 즐기고, 생각하고 성찰하기 위해 시간을 내보고, 취미 갖기와 그냥 놀기, 정성스레 먹기와 노래하기 등등이 안식의 기술이라 전한다. 쉬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한 그분을 생각한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 105:2~3)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