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그 소리는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애쓰는 목소리였다. 음정은 자꾸만 뒤틀렸고, 바이브레이션을 흉내 내는 떨림은 서툴렀다. 조금 웃음이 났다. 미안할 만큼 진심이 느껴져서였다. 특히 “To the place, I be-long” 부분에서는 자꾸 음이 튀었는데, 마치 변성기를 지나는 중인 듯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중이었다. 한 구절 안에서도 음정이 불안정하게 떨리고, 음색은 미묘하게 바뀌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생생한, 한창 자라는 중인 목소리였다.
그 불안정한 음정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어쩌면 무언가 ‘되려는 순간’이야말로 존재가 가장 아름다울 때일지도 모른다. 변화와 불완전함도 생명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성을 바꾸는 굴을 생각했다. 대부분 수컷으로 태어나지만, 필요에 따라 암컷으로 바뀌기도 하는 생명. 조건에 맞춰 유연하게 변하면서도, 그것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굴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경계를 넘고,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분법 속에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 좌우, 선과 악, 맞았느냐 틀렸느냐. 사람도 굴처럼 유연해질 수 있다면, 판단 대신 이해를 택할 수 있다면, 상처도 덜하지 않을까.
나는 커튼을 살짝 열었다. 혹시 그가 나를 보고 민망해할까봐 조심스러웠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헤드셋을 낀 채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하고 있었다. 영어 가사를 외우느라 애쓰는 얼굴이었다. 수행평가라도 준비하는 걸까. 나는 마음속으로 그가 끝까지 가사를 외우기를 응원했다. 솔직히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목소리다. 하지만 괜찮다. 자라는 중이니까. 노래하라, 소년이여. 끝까지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