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에 사실상 항복 선언에 가까운 요구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어떤 카드를 내놓아도 수락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최선의 카드’를 가져오라고 압박하고 있다.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하드 바게닝(Hard Bargaining·강압적 협상) 전략에 정부 협상팀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막판 타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국민일보에 “이런 일방적인 협상은 처음”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어떤 안을 내놔도 호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양국 간 협상에서는 국익 최대화를 위해 서로 높은 요구조건을 제시한 뒤 조율해 온 역사가 있었다”며 “지금은 우리가 우방국이 맞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미국은 우리 협상팀이 특정 분야의 양보 의사를 내비쳐도 타결 가능 여부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최고이자, 최종의 제안을 가져오라”며 협상팀을 압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카드를 주고받는 통상의 협상과는 거리가 멀다. 협상에 정통한 당국자는 “미국의 전략은 결국 최대 투자액을 받는 것이고, 이를 위해 트럼프가 모든 분야를 다 건드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협상 타결의 관건은 대미 투자 규모라고 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투자 규모와 방식에 대한 협상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안들은 부차적인 사안이 돼 협상이 잘 진전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정부에 4000억 달러(약 552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8월 1일 시한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연장되지 않는다. 미국에 아주 중요한 날!!”이라고 적었다. 관세 부과 시점이 더 이상 연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 등 남은 협상국들을 압박한 것이다.
협상에서 벽을 느낀 정부 일각에선 관세 발효를 감수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협상을 이어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협상 자산이 불균형한 상태에서 추가 관세까지 부과되면 더 악조건에서 협상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의 강압 전술에 대해 “더 많은 걸 얻기 위한 주장”이라며 “미국과 상호호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패키지를 짜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미 중인 구윤철 기획재정부·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협의 현황을 보고받았다. 이 대통령은 협상단에 “어려운 협의인 것은 알지만 우리 국민대표로 가 있는 만큼 당당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예솔 최예슬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