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선택지’만 던져준 어른들이 아이들 탓할 수 있나

입력 2025-07-31 00:03
KBS 1TV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 제작진이 30일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이백 신은주 정용재 PD. KBS 제공

“중고등학생 시절 성과가 나머지 50~60년 인생을 결정하니, 아이들은 모든 걸 소진해서 수능을 치러요. 그런 아이들에게 공대의 ‘도전’과 의대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KBS 1TV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을 연출한 이이백 PD는 30일 KBS에서 열린 제작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던지고자 했던 문제의식의 핵심과 맞닿은 물음이다. 다큐 인재전쟁은 한국과 중국의 인재 양성 체계를 다룬 3부작 시리즈다. 교양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유튜브 공개 5일 만에 조회수 57만회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된 1부 ‘공대에 미친 중국’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 배경을 분석하며 20년간 단계적으로 추진된 중국의 과학기술 중심 인재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중국은 해외 석학을 유치하기 위해 거액의 연구비, 주거 혜택 등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4일 방송된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은 2025 수능 만점자 11명 중 7명이 의대 진학을 택한 현실을 비췄다.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이 의대로 몰리는 현상과 함께, 전국적으로 ‘초등 의대반’ 성행, 대치동에서의 지능검사 사례 등이 다뤄졌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 사이에서 “올해 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영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대비가 부족한 한국이 언제든 뒤처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1·2부의 높은 관심에 힘입어 대안을 모색하는 3부 토론 방송까지 긴급 편성했다.

제작진은 의대를 선택한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의대와 공대를 동일 선상에 두고 한 방향으로만 인재를 몰아 온 우리 사회 모습을 조명하려는 취지였다고 강조했다.

제작 과정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중국 취재비자 발급부터 쉽지 않았고, 한국에선 현직 의사를 인터뷰했으나 의정갈등으로 예민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방송에 담지 못했다. 반면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컴퓨터공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인 칭화대 컴퓨터공학과 야오치즈 교수와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야오치즈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하다가 중국 당국의 요청으로 귀국해 자국 인재를 양성 중인 학자다.

방송에 대한 비판 중 제작진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인 건 “문제 제기만 있고 대안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 PD는 “의대 쏠림 현상은 단순히 교육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부동산, 일자리, 불평등 등 다양한 구조가 얽혀 있어 하나의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점을 취재하며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구체적 정책 제안을 넘어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인재 분배 균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정용재 PD는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환기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정책 결정자들이 이 목소리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 PD는 “입시에 모든 것을 소진한 학생들이 의대라는 보상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선택지를 제공한 사회가 학생들을 질타할 순 없다”며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본래의 호기심과 탐구욕을 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