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번 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잇따라 고위급 담화를 내놓은 것은 그간 한·미에 무관심하던 태도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행보다. 담화의 표면적 내용만으로는 기존과 달라진 게 없지만 한·미 정부가 최근 발신한 메시지를 계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알리겠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국가정보원도 30일 국회 보고에서 “러시아 파병 등으로 훨씬 유리해진 전략적 환경이 조성됐다는 자신감에서 북한의 담화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북한의 실제 꿍꿍이가 뭔지 더 지켜보되,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상황 대비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김여정(사진) 노동당 부부장은 그제 대미 담화에서 “북·미 두 정상의 나쁘지 않은 개인 관계가 비핵화 실현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면 우롱”이라면서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모든 것에 전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핵보유국의 대결이 서로에 이롭지 않음을 인정해 새로운 사고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흘 전 대남 담화에선 “남측이 나름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우린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 없다”고 밝혔다. 대미 담화는 지난주 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완전한 비핵화’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다. 대남 담화 역시 이재명정부의 대북 방송과 전단 중지, 개별 관광 허용 검토 등에 대한 입장이다. 마치 한·미의 유화적 제스처를 기다려 온 듯한 반응이다. 또 대화 재개의 기준선은 높였지만 대화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을 수도 있다.
한·미와 북한의 대화는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이고 그런 노력은 계속 기울여야 한다. 우리로선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 대화가 북측 뜻대로 마냥 끌려가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이 흔들려서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군축 협상이 북·미 대화 재개의 전제여서도 안 된다. 그런 협상이라면 한국이 적극 말려야 한다. 한·미가 이런 원칙 하에 앞으로 공조를 더 강화하고, 특히 한국을 배제한 북·미 직거래는 없을 것임을 계속 밝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