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 농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졌다. 참사 이후 주 정부는 미국 최초로 폭염 휴식 의무 규정을 만들었다. 그늘과 식수, 정기적인 휴식을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호주·스페인·프랑스 등도 뒤를 따랐다. 2010년대 후반 기후 위기로 극한 폭염이 잦아지자 카타르·UAE 등 중동 국가들은 ‘한낮 작업 금지’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건설·농업 현장에서 온열질환 사망 사건이 늘면서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폭염도 재난”이라며 입법을 요구해왔다. 지난 17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폭염 휴식권이 법제화됐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어기면 사업주가 처벌받는다. 제도적으로는 분명 진전이다.
문제는 현장이다. 영세사업장과 농축산·건설·하청 현장은 열악하다. 특히 고용주에게 종속된 이주노동자에게 폭염 휴식권은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비닐하우스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면서 점심 한 시간 외는 쉴 틈이 없다. 선풍기조차 없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더위를 견디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택배기사·배달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도 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폭염특보 때 법정 휴식을 보장받는 노동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업 중단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감을 잃을까 두려워서”가 가장 많았다. 제도가 있어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올여름에도 외국인 노동자, 배달기사, 야외 측량기사, 맨홀 작업자들이 폭염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폭염 휴식권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법은 무용지물이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가장 약한 이들에게 먼저, 그리고 더 깊게 스민다. 이 불평등을 외면한 채 휴식권을 말할 수는 없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