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당신을 찰칵! 삶의 터닝포인트를 찾아드립니다

입력 2025-08-02 03:01
서울 양천구에 있는 ‘스튜디오 주인공’은 영화 속 장면을 재해석한 콘셉트로 인물을 촬영해 그가 그 삶의 주인공임을 표현하고자 한다. 사진은 영화 ‘뮤리엘의 웨딩’ ‘마틸다’ ‘셰이프 오브 워터’ ‘허니와 클로버’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각각의 모티브로 삼아 연출한 이미지. 그래픽=강소연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무대 한가운데서 박수받는 주인공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일상에 쫓기고 비교에 지친 조연이나 관객처럼 느끼는 쪽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준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걸작이며 그분의 시간표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라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존귀한 존재며 삶의 주인공으로 부름 받았다.’ 남들의 시선으로 인한 상처를 이겨내 온 삶의 여정 속에서 이 진리를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빛과 프레임으로 전하고 싶었다”는 청년이 있다.

서울 양천구의 사진관 ‘스튜디오 주인공’을 운영하는 이가영 작가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진관 같은 이곳은 기존의 영화를 재해석해 인물 사진을 촬영하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단순히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잊고 지낸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도록 이끄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 실제 이곳을 찾은 이들은 “이제는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조명이 켜지고 이 작가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한 사람을 향하는 순간 마음 깊이 묻어둔 진짜 자신과 마주한다. ‘찰칵’ 셔터가 눌리는 찰나 삶이라는 무대 위 가장 빛나는 장면이 기록된다.

‘내가 주인공’ 사진이 준 용기

“이제는 혼자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요즘도 문득문득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자여서 초라한 내가 아니라 혼자여서 근사한 나를 남기고 싶어 이곳을 찾았어요.”

최근 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한 20대 청년은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는 그는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주인공 홀리(오드리 헵번)가 돼보고 싶어 촬영을 결심했다. 화려한 삶을 꿈꾸면서도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홀리의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스튜디오 한편에 준비된 드레스룸에서 어깨를 드러낸 검은 롱드레스와 긴 장갑, 반짝이는 머리 장식까지 갖추고 나온 그는 주인공 홀리가 됐다.

이 작가는 촬영 내내 그의 눈빛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카메라 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눈빛에서 ‘외롭다’는 말보다 더 단단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2시간가량의 촬영을 마친 뒤 청년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늘 혼자인 내가 이렇게 근사해 보인 건 처음이에요. 저도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사진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잊고 지낸 자존감을, 또 다른 이에겐 위로와 살아갈 용기를 안겨줬다.

지난해부터 스튜디오를 운영해온 이 작가도 오랫동안 자신을 인생의 조연처럼 여겨왔다. 그는 “영화학도로 꿈을 좇았지만, 현장에선 늘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며 “그러다 문득 나처럼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왕따 겪으며 극복한 ‘남의 시선’

이 작가는 1998년 6월 인천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두 살 무렵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늘 교인에게 본이 돼야 한다”며 엄격했지만, 어머니의 다정한 품은 따뜻한 울타리가 돼주었다. 제주의 자연은 놀이터였고 바다와 오름, 바람은 그에게 깊은 감성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자연도 풀어줄 수 없는 외로움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그는 뚜렷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들의 날 선 말과 알 수 없는 시선은 마음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았다.

이 작가는 “스스로 중퇴를 선택했고 그 경험이 오히려 내 길을 확신하게 해줬고 부모님이나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타인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다. 검정고시 후 일반고에 진학해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직접 연극 동아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는 실수를 겪은 뒤 연출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이 작가는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지만 예술계 진학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반대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대보다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다. 독학으로 부산 동서대 영화과에 입학해 학비와 생활비까지 자립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꿈을 이뤘지만 늘 행복한 건 아니었다. 대학 시절 세 편의 단편을 만들며 회의와 갈등에 지쳤고 결과물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영화를 내려놓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 자동차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 알고 지내던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이 작가는 “‘아는 감독님이 제주에서 촬영이 들어가는 데 함께할 연출부를 찾고 있다고 했다”며 “딱 5분 고민하고 바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다시 찾은 현장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고 회고했다.

“하나님 앞 모두가 주인공”
지난해 2월 오스트리아 쇤브룬궁 거리에서 사진 촬영 중인 이가영 작가. 이 작가 제공

4학년에 복학한 후 제작한 졸업작품 ‘오 주님!’은 목회하는 아버지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던 딸이 포도주를 매개로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꿈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연출부터 각본, 편집까지 직접 맡은 이 작품으로 그는 2022년 한국기독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작가는 “늘 바빴던 목회자 아버지와 외로웠던 내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며 “인간의 외로움은 결국 예수님의 복음 외에는 채워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수상을 통해 아버지에게 내 꿈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졸업을 앞두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계가 침체돼 현장이 멈춰섰다. 이 작가도 생계를 위해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연출부에 들어갔다. ENA ‘가우스전자’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등에 조연출로 참여하며 전국을 누볐다. 하루 15시간에 이르는 촬영과 숨 돌릴 틈 없는 현장에서 그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이어폰 너머로 가수 이찬혁의 ‘파노라마’ 가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이 작가는 “노랫말을 듣는 순간 잊고 지냈던 영화에 대한 간절함이 되살아났다”며 “하나님이 나를 통해 기뻐하시는 일, 내가 하고 싶던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스튜디오 주인공’을 오픈했다.

사진은 그가 영화 밖에서 감정을 연출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했다. 영화 ‘마틸다’를 재해석해 찍은 촬영을 한 손님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원래 이렇게 밝았던가요.”

이 작가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영화 속에서 생일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던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저는 마틸다만을 위한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싶었어요.”

그의 대답을 들은 손님은 눈물을 터뜨렸다. 이 작가는 그가 우는 이유를 묻는 대신 다가가 조용히 안아줬다고 했다. 이 작가는 “말없이도 사진을 통해 마음이 위로받는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요즘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다. 양천구 지역 예술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된 단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비밀을 간직한 여고생 두 친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다.

그는 숱한 무너짐을 실패로 생각하며 좌절하는 이 시대 청년들을 향해 “도전을 했기에 실패를 경험한 것이고 그것 역시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관문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살다 보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신스틸러’처럼 작은 장면에서 충분히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며 각자의 인생 드라마, 희망 드라마를 써 내려 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