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흥행은 한류 4.0 시대의 도래를 상징한다. 흔히 한류의 진화 단계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동북아시아에서 ‘대장금’ ‘겨울연가’ 등 드라마로 촉발된 한류 1.0 시대,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전반 K팝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아시아 전체와 일부 서구 지역으로 퍼진 한류 2.0 시대, 2010년대 중반부터 K팝과 드라마를 포함한 한국 문화 전반이 전 세계로 확산한 한류 3.0 시대로 분류됐다.
최근 한발 더 나아가 K콘텐츠를 넘어 K라이프 스타일이 전 세계의 주류 문화로 확산하는 흐름을 한류 4.0 시대로 부르고 있다.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진 미국 소재 다국적 회사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가 한국 정서가 가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것처럼, 한류 4.0 시대에는 누가 어디에서 한국 기반 콘텐츠를 생산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한류의 성공이 한국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덕분이라는 분석이 해외에서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일본에선 ‘국책’ 프레임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오히려 “정부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다”고 말하곤 한다. 자신들의 노력이야말로 한류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표현이다.
물론 정부 정책이 한류의 확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한류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업계의 창의성과 역동성, IT 인프라의 변화와 활용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전 세계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소비와 문화적 수용을 통해 확산됐다.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은 김대중정부가 전환점이 됐다. 김대중정부는 문화산업을 강조하는 한편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어 노무현정부는 팔길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예술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하지만 예술위는 명목상 독립적일 뿐 정관 변경, 성과 평가, 예산 변경 등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산하기관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문체부의 관료주의까지 강화돼 팔길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게 되면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가 작동했다.
이후 문재인정부 시절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사태로 잠시 고개를 숙였을 때 왜곡된 예술행정을 바꿔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윤석열정부가 블랙리스트 실행 의혹을 받는 유인촌 장관과 용호성 차관을 기용함으로써 문체부의 권위적 관료주의는 더욱 심각해졌다. 문화 현장 전반에서 행정 중심의 위계적인 시스템, 관료들의 산하기관 낙하산 인사 일상화 등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과 파면 그리고 대선 국면의 와중에도 유 장관과 문체부는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 산하기관 단체장 인사권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예술계에서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문체부 관료주의에 대한 대개혁 없이는 그 어떤 문화정책과 의제도 의미가 없다”는 성명서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최근 문화예술 단체들이 최휘영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내놓고 있다. 이는 최 후보자가 비즈니스 플랫폼 경영인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많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한류 4.0 시대에 걸맞게 문체부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장을 모르는 최 후보자가 문체부 관료들에게 휘둘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