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도쿄의 변두리. 어스름한 빛 사이로 조용히 들려오는 거리의 비질 소리.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그 소리에 눈을 뜬다. 이부자리를 개고 싱크대에서 이를 닦고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 도구들로 채워진 미니밴에 올라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고르며 시부야로 향한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뉴올리언스에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불리는 집이 있어요).”
히라야마의 차 안에서 영국의 블루스 록 밴드 애니멀스가 1964년 발표한 ‘더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흐른다. 햇살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단조로운 하루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그가 매일 마주하는 건 변기와 세면대, 오물이 흩뿌려진 바닥들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청소부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한 화장실 청소를 마친 뒤 다음 화장실로 향하는 짧은 쉼. 그 틈에 자판기 커피로 목을 적시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낡은 카메라로 담는다. 고모레비(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그 찰나의 빛이 그의 하루를 환히 밝힌다.
자신의 일상과 현저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장면과 상황을 마주할 때 사람들은 “영화 같다”고 한다. 현란한 특수효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나 굴곡진 역경의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퍼펙트 데이즈가 보여주는 일기장 같은 장면들이 영화처럼 느껴지는 건 히라야마의 일상이 분주하고 치열하기만 한 자신의 그것과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여서일지 모른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너무 익숙해져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하루의 안온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 채 지나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일터에서의 치열함과 분주함, 육아터에서의 고군분투도 다르지 않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새벽 출근과 퇴근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일정, 주말과 평일의 경계 없이 출근을 위해 아이에게 ‘신발장 이별’을 고해야 하는 상황이 익숙한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하루는 아이가 달력을 보며 물었다. “아빠, 이번 주말엔 같이 놀 수 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는 또 늦어요?” 아빠의 부재가 예상되는 날을 표시해둔 달력의 네모 칸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은 아빠랑 꼭 놀이터 가자.” 아빠의 짧은 한마디에 아이의 눈가엔 생기가,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날 출근길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한 어느 평범한 오후, 놀이터에서 웃고 또 웃었던 날. 일상적이고 평범했던 그 짧은 시간이 햇살처럼 마음을 데워줬더랬다. 아이에게도 내게도 분명 ‘퍼펙트 데이’였던 날이었다.
“Good day sunshine, I need to laugh, and when the sun is out, I’ve got something I can laugh about(참 좋은 날의 햇살. 웃고 싶어, 그리고 해가 뜰 때면 드디어 웃을 일이 생기게 되는 거지).”(비틀스의 ‘굿 데이 선샤인’ 중에서)
육아는 늘 완벽할 수 없다. 지치고 서툴고, 가끔은 놓치고 후회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한 찰나의 순간, 눈을 맞추고 손을 잡은 그 짧은 시간들은 인생의 가장 반짝이는 장면이 된다. 히라야마가 고모레비를 찍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한 태도, 느림의 미학, 매 순간에 집중하는 삶은 보는 이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자주 무뎌진다. 하지만 그 일상 속 어딘가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알아보는 눈, 그 순간을 마음에 담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삶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매일 조금씩 완성된다.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