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트럼프 시대의 경구들

입력 2025-07-31 00:34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주간 인터뷰 코너 ‘FT와의 점심식사(Lunch with the FT)’는 31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양질의 인터뷰를 자랑한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분야 권위자들이 쏟아내는 말 중에는 지금 이 혼란한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이해하고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경구도 많다.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아주 훌륭한 스토리텔러이고 그것이 곧 힘입니다. 미국 유권자 다수를 움직인 트럼프의 스토리는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가니 우리끼리 그걸 지켜야 한다’는 매우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트럼프의 간명한 메시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트럼프가 각국에 마구잡이로 관세를 때리면서 하는 말도 “미국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들에 갈취당해 왔고 이제 우리가 갈취할 차례”라는 것이다.

인도에서 외무장관을 10년째 하고 있는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가 “미국인들은 미국의 글로벌 개입에 지쳤다. 개입에 따른 혜택은 줄고 비용만 커졌다고 느낀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의 얘기다. 자이샨카르는 트럼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 것을 실제로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반응들이 있는데 나는 놀랍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가 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겠죠.” 자이샨카르는 트럼프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도 거래나 승부에선 장점이 된다고 본다. “당신이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넘겨준 꼴이 됩니다.”

미국 대통령들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쓴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당대의 미디어를 지배하는 리더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32대 대통령 재임 시절) 거리의 사람들은 라디오에 붙어서 루스벨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텔레비전의 힘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가 등장했고 트럼프는 그것을 마스터했습니다.”

프랑스의 논쟁적 작가 미셸 우엘벡은 트럼프에 대한 호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우엘벡은 지난 20년간 프랑스에서 극우파의 부상을 이끈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이민”이라고 답하며 “엘리트들에 대한 완전한 경멸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는 키어 스타머 총리에게 “이민 문제에 대해 가장 강경하고 유능한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훈수를 뒀다.

트럼프 1기 때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최근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33세 인도계 조란 맘다니 얘기를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진짜임을 나타내는 것(authenticity)’이 전부입니다. 맘다니는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낼 수 있어요. 그가 전통적 민주당을 날려버렸습니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미래입니다.” 맘다니가 성향은 좌파지만 소셜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포퓰리스트라는 측면에서 결코 무시 못할 존재라는 얘기다.

배넌은 트럼프를 미국에 세 번째로 등장한 세계사적 지도자로 평가했다. 미국을 건국한 조지 워싱턴, 미국을 내전에서 구한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반열에 올린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넌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악마 중 하나’로 규정한 FT도 이 마지막 말에는 동의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는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