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알제리에서 본 아프리카

입력 2025-07-31 00:33

트럼프의 세계 질서 해체 속에
새로운 도전 직면한 아프리카
불합리한 국경· 단절의 정치
통합과 안정의 장애물로 작용

아프리카와 공동번영 이뤄낼
최적 동반자·협력자인 한국
단순한 원조 수준 넘어서는
글로벌 사우스 전략 수립할 때

이달 초 알제리를 방문했다. 아프리카의 남단 케이프타운에 들른 지 7개월 만에, 이번엔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걸림돌과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사실 알제리는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나라는 아니다.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는 나라, 교육 수준이 높고 인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 유럽과의 지리적·역사적 근접성이 가져오는 농밀한 교류를 통해서 경제 발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방문은 알제리가 아프리카 국가임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1990년대 십년이 넘도록 무슬림 정치세력과 세속 군부 간 끔찍한 내란을 겪었고, 이어진 20년 독재로 인해 알제리는 개방보다는 폐쇄, 자유보다는 질서를 더 중시하는, 어쩌면 잊힌 나라, 잊히고 싶은 나라로 인식됐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아프리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20세기 질서의 해체과정에서 구조적 제약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식민 지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불합리한 국경선과 이에 따른 단절의 정치 구조는 여전히 사회통합과 안정된 국가 건설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알제리의 경우에도 사헬지대와 직접 연결돼 있는 남부지역은 국경을 넘어오는 불안정이 인접국과의 적대 관계를 강화한다.

둘째, 아프리카는 대부분 원자재 중심의 단순한 수출 구조와 낮은 제조업 비중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하단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데, 화석연료 중심의 단순한 수출 구조가 특징인 알제리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종이컵부터 첨단 기술 제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사상 초유의 특이한 경제구조를 가진 중국의 등장 앞에서 저임금을 기반으로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은 공허하게 들린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는 추가적인 시장 창출을 제약해 아프리카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 넷째, 국제 개발협력은 종종 아프리카를 ‘수혜자’로 고정하며, 주체적인 전략 수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기후위기와 빠른 디지털 전환, 청년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사회 전반에 복합적인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

이런 도전 앞에서 우리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프리카 성장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첫째, 아프리카 지역경제 통합을 더 강화해야 한다. 식민 유산에 따른 여러 난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돼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별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지역경제 통합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오히려 약화해야 한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산업화가 필요하다. 아프리카 전통시장에는 중국과 동남아산 제품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빠른 기술 도입과 효율적인 유통망 구성, 민첩한 재교육을 통해 일부 산업에서라도 중국 및 동남아 산업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제조업 육성 전략을 넘어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화를 추구해야 한다. 마치 유선전화를 뛰어넘고 무선전화로 곧장 가듯이, 내연기관차를 넘어서 곧바로 전기차로 가듯이 비약적인 산업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셋째, 미국의 도움 없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시장을 창출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 아프리카는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 시장이 없는 세계를 상정해 보고, 과연 다른 나라들끼리 어떻게 공동 번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넷째, 개발협력 모형을 기술혁신 모형으로 바꿔야 한다. 과거 일방적 원조 모델에서 벗어나 기술과 지식을 공동 설계하고 공유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이는 아프리카가 주도권을 갖고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섯째, 청년 중심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인구의 60% 이상이 25세 이하인 인구학적 특성은 아프리카만의 특권이자 기회다. 청년세대를 타기팅해 교육, 스타트업 지원,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일자리 창출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은 아프리카와의 공동 번영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동반자다. 한국의 글로벌사우스전략도 이런 깨달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적개발원조(ODA) 전략만으로 대개도국 전략을 다 채울 수 없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