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이 심은 기독교國의 꿈… 1990년대 이후 꿈으로 끝났다

입력 2025-07-31 03:06
1974년 열린 ‘엑스플로74’ 참가자들이 서울 여의도광장에 둘러앉아 선교훈련 교육을 받고 있다. 국민일보DB

한국교회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기독교 국가’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가 권력을 잡고 정치적 이념의 중심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독교적 가치가 법과 윤리의 기초가 된다면 동성애와 동성 결혼 등 기독교 전통 윤리와 충돌하는 입법이 불가능해질 것이고 공립학교에서도 기독교적 가치가 가르쳐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어떤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법이 국가의 법 위에 있어야 하며 기독교가 한국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독교 국가를 향한 대중적 열망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오랜 세월 우리나라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 국가의 형태를 유지해 왔다. 조선을 세운 신진 사대부 세력은 고려 후기 불교의 폐해를 절감했기에 철저하게 세속적인 유교적 정치철학에 기초해 국가를 세웠다. 조선이 망한 이후에도 일제와 대한민국 헌법에서 정교분리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져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한국 기독교인이 기독교 국가를 꿈꾸게 됐을까.

그 꿈의 시초는 선교사였다. 내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과 1907년 대부흥에 놀랐다. 교회는 자발적으로 성장했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다. 구한말 유교 질서가 무너지며 기독교가 새로운 근대적 질서를 제시했으며 반외세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애국심과 신앙이 결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선교사 호러스 G 언더우드는 ‘한국의 부름’(1908)이라는 책에서 희망에 찬 어조로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전망했다. “지금 내 눈앞에 명백히 기독교 국가가 된 한국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는 악정과 무지와 미신의 속박에서 정치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해방된 나라이다.” 흥미롭게도 ‘조선’이라는 국호는 영어로 ‘선택받은’이라는 뜻을 가진 ‘초즌(Chosen)’으로 표기됐는데 선교사들이 품은 기대가 드러난다.

2007년 서울시청광장에서 부활절연합예배가 진행되는 모습. 국민일보DB

대한민국 건국 과정도 기독교 국가의 꿈을 강화했다.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 건국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승만 박사는 제헌국회 개원사에서 대한민국 건설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감사하며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언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초기 정부 구성원 다수가 기독교인이었고 미국이라는 기독교 문화 제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념은 박정희 정권에서 더욱 강력하게 실현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배경 아래에서 1960~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기독교는 전례 없는 부흥을 경험했다. 교회는 매년 7∼8%씩 성장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100만~150만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형 집회도 열었다. 기독교가 군종 제도를 사실상 독점하도록 특혜를 받은 것도 기독교 정신과 국가 이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당시 교회는 문화적으로도 첨단을 걷고 있었으며 미국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교회 문화의 절정은 성탄절이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명동거리를 누비며 밤새 축제를 즐기고 중·고등학생들은 교회에 모여 선물을 교환하며 밤을 새우고 새벽송을 돌았다. 비록 꿈이지만, 그 시절의 영광이 그립다.

그러나 기독교 국가의 꿈은 처음부터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은 단 한 번도 전체 인구의 20%를 넘긴 적이 없다. 더구나 한국 기독교가 강조해 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친미 같은 가치들은 그 자체로 복음과 동일시될 수 없는 일시적 가치일 뿐이다. 기독교가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시장경제의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는 인권이나 노동, 빈곤 등의 문제에서 집권자의 편을 들었다.

1980년대 이후 그 한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적 기독교는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 일부 진보 기독교 진영은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참여했지만 소수에 머물렀다. 시대 변화에 신학적으로 응답하지 못한 교회는 결국 사회적 주도권을 상실했다. 1990년대 이후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확산하면서 진리의 독점자가 되려 했던 기독교는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기독교 국가의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는데 이는 70년대로의 퇴행이고 정치적 극단주의의 길이다. 그 결과는 사회로부터의 외면과 조롱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것은 권력으로 국가를 통제하는 ‘기독교 국가’ 모델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사회의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공론장에서 다양한 의견과 공존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배타와 독선으로 진리를 주장하는 대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야 한다. 철 지난 십자군의 권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 정신을 실천함으로 현대 사회에 도전과 충격을 줘야 한다.

“옛날이 지금보다 더 좋은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라. 이런 질문은 지혜롭지 못하다.”(전 7:10, 새번역)

장동민 교수(백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