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한 피의자 A씨(62)의 범행 동기가 이혼 이후 가족들과 점차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고립감, 가장으로서의 자존감 상실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착각과 망상이라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살인,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예비,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A씨는 당초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가정불화를 주장했다. 또 “가족이 짜고 나를 셋업했다(함정에 빠뜨렸다)”는 주장도 펼쳤다. 경제적 어려움 등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범행 동기는 아니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25년여 전 협의이혼한 뒤에도 당시 어린 아들을 위해 2015년쯤까지 전처와 동거를 이어온 점, 지속적으로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점 등을 토대로 특별한 가정불화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경제적 부분에 대해서는 생활비, 통신비, 국민연금, 아파트 공과금, 수리비 등 가족들의 지원이 계속된 것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점차 외톨이라는 고립감에 사로잡혔을 뿐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자존감까지 상실하며 심리적으로 위축돼 범행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거주하던 서울 쌍문동 집에 인화성 물질을 설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착각이 한두 개가 아니라 망상에 가깝다고 보인다”며 “전처가 생계를 계속 부담하고 아들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니, 정상적인 가정이었는데 마치 잠깐 헤어지게 된 것처럼 착각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가족들이 모든 사실을 숨기면서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고 착각했다”고 덧붙였다.
아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유와 관련해서는 “애착이 심했기에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으로 본다”며 “전처는 범행 당일 오지 않은 게 확인돼 아들만 범행 대상으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A씨의 범행 계획은 1년여 전부터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지난해 8월부터 아들을 살해하기로 계획하고 우연한 기회에 봤던 사제 총기 제작 관련 영상을 참고해 필요한 재료 등을 구입했다. 범행을 앞두고는 주거지 방화를 목적으로 타이머 콘센트, 시너 등도 샀다.
사제 총기 격발 실험은 자신의 집에서 산탄 총알을 장전하지 않은 채 이불에 쏘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용된 산탄 총알에 대해서는 A씨가 “20여년 전 모르는 이로부터 50만원을 주고 다수를 구입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A씨는 지난 20일 오후 9시31분쯤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한 아파트 33층 집에서 사제 총기를 사용해 아들 B씨(33)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 당일은 A씨의 생일이었고, B씨가 잔치를 열어준 자리에는 며느리, 손주 2명, 며느리의 지인이 함께 있었다.
A씨는 현재 B씨만 살해하려 했다며 살인미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과 확보한 증거물 등을 토대로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인화성 물질과 관련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가 나오는 대로 폭발물사용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인천=김민 기자 ki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