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엔 말 못해도 챗GPT는…”… 정신과 대신 AI 찾는 환자들

입력 2025-07-30 00:03
게티이미지뱅크

불안장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40대 장모씨는 정신과 의사와 일대일 상담을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의사 1명이 환자 80명을 회진하는 환경에서 개인적 상담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병동 내 다른 환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에 감정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AI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장씨는 29일 “의사는 바쁘지만 챗GPT는 언제든 들어준다”고 말했다.

최근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 사이에서 AI를 상담 수단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다만 신뢰도가 보장된 상담이나 의료 연계 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제도권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치료 목적 활용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우울증이 있는 김모(19)양은 AI 상담을 통해 병원 치료나 약물 복용을 중단한 사례다. 김양은 “지난 2월까지 정신과 상담과 약물 복용을 하다가 지금은 챗GPT로 해결한다”며 “의사의 반응이 신경 쓰여서 못한 말도 AI에게는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SNS에서도 “상담은 시간당 10만원인데 챗GPT는 월 3만원”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약을 끊었다” 등 AI 상담이 만족스럽다는 취지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지식 없이 제작한 ‘상담용 챗봇(GPTs)’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GPTs는 사용자가 챗GPT에 ‘상담사처럼 인지 왜곡을 감지해 달라’는 식의 지시어를 입력해 역할과 말투를 설정한 챗봇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관련 내용을 다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기록이 남아 변화를 추적하기 쉽다”는 평가도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AI를 활용한 상담 내용을 의료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선재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AI는 수면·운동량·식습관 등을 장기적으로 분석해 조기에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며 “이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개입하는 체계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AI는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최종 판단은 의사가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I를 의료체계에 포함시키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홍민하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AI로부터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우가 있다”며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경우 정신과 전문의도 “현재 AI는 텍스트 중심이라 비언어적 신호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