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 오브 킹스’ 열기 속 각양각색 번역서 풍년

입력 2025-07-30 03:01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에서 디킨스가 그의 아들 월터와 함께 예수의 삶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모습. 모팩스튜디오 제공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아버지는 너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꼭 알려주고 싶단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으로 영미문학에 한 획을 그은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사진)가 쓴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 첫 문장이다. 자녀에게 쓴 사적인 편지이자 개인적 신앙에 관한 글이란 이유로 미공개 원고로 남겨졌다가 디킨스 사후 85년 만에 출간된 작품이다.


최근 이 책을 원작으로 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가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주목받으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번역서를 쏟아내고 있다.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심받는 영화만큼이나 같은 원본을 바탕으로 한 번역서들의 서로 다른 편집과 해석도 눈길을 끌고 있다.

예수를 경외한 19세기 대문호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의 원작인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 국내 번역서 표지.

디킨스는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영국 사회 단면을 날카롭게 묘사한 작가다. 가정 폭력과 범죄, 아동 노동에 노출된 고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두 번째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가 대표적이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며 약자의 처지에 깊이 공감한 디킨스의 글에 노동 계급부터 빅토리아 여왕까지 모든 독자층이 열광했다.

디킨스는 당대 로마 가톨릭교회 등을 비판했지만 그의 여러 작품 근저엔 기독교적 가치관이 있다. 그는 말년에 한 비평가에게 쓴 편지에서 “언제나 작품에서 주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존경을 표현하고자 애써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GK 체스터턴과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등 유명 문인도 그의 작품 속 기독교적 색채를 인정한다. 러시아 대표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그를 “위대한 기독교인”으로 평했다. 이 책 원고를 마지막까지 보관한 디킨스의 아들 헨리 필딩 디킨스도 “아버지는 깊은 종교적 신념을 지닌 사람”으로 회고한다.

원작 오류 정정·삽화 수록 번역서들


이런 그가 자녀들을 위해 친필로 작성한 ‘우리 주님의 생애’는 예수의 생애와 주요 사역, 부활 후 초대교회의 행적 일부를 다룬다. 영화는 예수의 윤리적인 측면에 집중한 원작보다는 기독교적 배경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며 예수를 ‘진정한 왕’으로 묘사한다. 장성호 감독은 번역본 ‘예수의 생애’(북폴리오)에 실린 특별 서문에서 “원작 자체엔 예수의 신성과 구원 등 기독교 복음의 핵심 요소가 다소 부족할지라도 그분이 전하고자 했던 사랑의 메시지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고 했다. 영화 스틸컷을 표지에 담은 ‘예수의 생애’는 북미 박스오피스 한국 영화 역대 1위 기록과 함께 ‘대문호 디킨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이야기’임을 부각한다. 책은 알라딘 7월 넷째 주 종교/역학 분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 예수의 생애’(두란노)는 원작이 지닌 신학적 측면에 방점을 둔 번역서다. 디킨스가 성경의 기록과 다르게 표현한 부분을 성경에 맞춰 수정했고,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라는 점을 강조하는 부연 문장을 일부 추가했다. 자간을 넓히고 삽화 70점을 넣어 가독성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찰스 디킨스의 예수 이야기’(이른비)엔 디킨스의 며느리 마리 디킨스가 쓴 초판 서문과 미국판 서문, 디킨스가 부친 ‘아들에게 쓴 편지’를 수록해 차별점을 뒀다. 그는 막내아들 에드워드에게 쓴 편지에서 “남에게 대접받길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마 7:12)고 당부하며 이를 “구세주가 준 가장 위대한 규율”이라고 소개한다. 또 “성경은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졌거나 앞으로 알려질 최고의 책”이라며 “아침·저녁으로 개인 기도를 하는 습관을 버리지 말 것”을 권한다. 디킨스 역시 “기도의 습관을 결코 버린 적 없고, 그 기도가 주는 위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원작이 신문에 게재됐을 때 함께 실린 프랑스 판화가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도 여럿 실렸다.


또 다른 번역서 ‘예수의 생애’(더스토리)는 책에 디킨스의 연보와 작품 해설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대형출판사 민음사도 영화 개봉에 맞춰 번역서 ‘예수의 생애’를 출간했다. 여기엔 예수의 주요 사역을 그린 카라바조와 고흐 등 유명 화가의 명화 63점이 실렸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