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로 가늘어지는 모발을 염려하며 살아가지만 총각 시절 J와 필자는 제법 잘 나가는 결혼식 축가 듀오였다. 내가 기타를 맡고 J는 노래를 불렀다. 인디 밴드나 R&B 그룹의 곡이 주 레퍼토리였고 식장 분위기를 꽤 살렸다고 자부할 만했다.
한동네에 사는 J와는 요즘 하천변을 함께 뛰며 ‘런톡’을 한다. 달밤의 습한 공기 속 들숨과 날숨 사이로 대화가 흐른다. 정치 K팝 육아 부동산 교회 이야기까지 대화 주제는 방대하다. 최근엔 찬양 이야기가 뜨겁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찬양 봉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일반인 남성 중 J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도 올해 봄에 8주의 훈련을 거쳐 교회 찬양팀에 합류했다. 지원자가 많아 오디션도 봤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밋밋해진 신앙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훈련의 혹독함을 얘기하며 열변을 토했다.
매주 신앙과 봉사, 예배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정리해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와 함께 살아왔지만 이 과정은 신앙 전반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필자도 최근 회사 수요예배에서 찬양 인도를 맡았다. 신우회 선배의 권유로 반년을 망설이다가 결국 항복했다. 동료들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10년 만의 찬양 인도는 어설펐다. 손가락은 코드 대신 허공을 누른다. 하지만 고생스럽다기보다 은혜가 더 컸다. 매주 찬양을 준비하며 흐릿했던 신앙이 선명해지고 노랫말 속 말씀이 삶에 스며드는 걸 느낀다.
이쯤에서 인정할 현실이 있다. 진입이 쉬우면 이탈도 쉽다. 함께 찬양을 시작했던 또 다른 인물, 지난 칼럼에 소개했던 H의 사례가 있다. 예배팀 드럼을 맡으며 신앙적으로 좋은 흐름을 타던 그가 최근 찬양팀 리더와의 갈등으로 팀을 떠났다. 연주자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라 쉽게 합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사실 봉사를 그만둘 이유는 넘쳐난다. 피곤하고 갈등도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 본업으로 바쁘다. 그런 수많은 변수를 견디려면 어쩌면 교회 봉사에도 일정한 ‘진입 장벽’이 필요하지 않을까. J는 “8주 훈련이 힘들긴 했지만 쉽게 들어올 수 없었던 만큼 지엽적인 문제가 생겨도 중심을 지킬 힘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 자체가 부족한 시대다. 가뜩이나 코로나 이후 봉사자가 줄어들고 있는데 무슨 장벽이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 지앤컴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19세 이상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만 35~49세 교인은 교회 내 봉사 긍정률이 가장 낮은 ‘봉사 취약계층’(27%)으로 나타났다.
자격시험을 보자는 건 아니다. 사람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구성이 아니어도 괜찮다. 세련미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지만 감수할 줄 아는 태도, 즉 ‘훈련된 아마추어리즘’의 출발점이다.
노래 잘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이들을 돈 써서 불러오면 겉보기엔 훨씬 근사하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꺼지는 거품일 수 있다. 더 멋져 보이고 싶은 교회의 욕망이 만들어낸 장식일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교회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나가도 된다. 하나님은 그런 중심을 기뻐 받으신다고 믿는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유급 사역자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민감한 주제였다. 돈을 받는 만큼 결과를 내야 한다는 계산, 성과 중심의 구조는 어느덧 교회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신앙의 봉사는 성과보다 과정에 대한 마음이 먼저다. 아마추어는 서툴다. 그러나 서툰 자리에서도 진심은 싹튼다. 그 진심이 은혜의 시작이다.
예전에 속했던 교회에서는 초 단위 예배 진행표가 사용됐다. 음향 조명 연출 무대…. 세련된 예배의 이면엔 물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던 오리발 같은 봉사자들이 있었다. 교회는 지금 누구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일명 갑자원(甲子園)은 프로보다 더 뜨거운 인기를 누린다. 정교함은 부족해도 투박한 진심이 그라운드를 채운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도 비슷하다. 축구를 처음 접한 연예인들이 눈물 부상 열정으로 매 경기를 만들어간다. 실력보다 열정, 정답보다 태도, 화려함보다 꾸준함. 하나님도 그런 모습을 아끼시지 않을까.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