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7월 대형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했다. 4㎏ 쌀포대, 3ℓ 세제, 1ℓ 샴푸 4개들이 박스들이 칸막이 안에 산처럼 쌓인 곳이었다. 장마철이지만 아침부터 빛이 바짝 드는 날이었다. 무거운 포대와 박스를 들어 대용량 카트에 실었다. 어떤 물건을 실어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개인용디지털단말기(PDA)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집어 개수만큼 차곡차곡 쌓았다.
처음엔 쉬웠다. 조금 무거웠지만 뭐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카트 하나를 끝내고 두 번째 카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4㎏ 쌀포대 20개를 싣고, 3ℓ 세제 10개를 실으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찼다. PDA 시계를 확인하자 겨우 오전 9시였다.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겨우 1시간 지난 거였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오후 6시 퇴근시간까지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건물 자체가 서서히 더워지는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개방형 창문이었다. 뜨거운 공기가 그대로 들어왔다. 군데군데 산업용 에어컨이 있지만 냉기가 닿는 곳은 그 근처 조금이었다. 두 번째 출근한 날이었다.
공장 알바를 시작한 뒤 주로 의류 포장 공장에서 일했는데 7월이 되자 일이 없어졌다. 내가 연락하던 인력알선 센터에서는 장마철에 의류 포장 공장이 거의 쉰다고 했다. 이즈음 나는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질 지경이었다.
알바 앱에 접속해 이곳에 지원했다. 처음 출근한 날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오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휴게실에서 안전교육을 받았고 오후에는 액세서리나 옷들이 있는 가장 가벼운 층에서 작은 마트 카트를 끌며 경쾌하게 물건을 집품했다. 두 번째 출근하던 날, 가장 무거운 층으로 배정됐다. 거기 알바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듯이. 겨우 1시간 만에 4㎏ 쌀포대를 들고 숨이 가빴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냥 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뜨거운 기운이 몸으로 불어닥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다리와 팔만 움직였다. 얼굴이 빨개져 헉헉거리며 좀비처럼 걸었다. 나뿐 아니라 통로에서 마주치는 모두가 영혼 없는 얼굴로 허우적거리며 카트를 끌었다. 점심을 먹으며 좀 쉬고 오후에 복귀하니 건물 자체가 뜨거워져 오전보다 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적응이 되는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다 가끔 물을 마셨다. 거의 5만보를 걸은 것 같다.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돼 PDA가 멈췄다. 무거운 다리로 가파른 8개층 계단을 걸어 퇴근했다. 숨이 넘어가는 듯했다. 다시는 그곳에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출근 신청을 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나도 나이와 성별만 알려줬는데 출근하라고 했다. 나이도 많은데. 그게 좋아서 나중에 다시 그곳에서 일했다. 힘들지만 차별은 없는 일터였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