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입력 2025-07-30 00:32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면 어김없이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가 시작된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주말 아침, 교사들은 각자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교회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회의 끝에 올해는 아이들에게 손편지와 함께 ‘웰컴 스낵’을 선물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명찰과 단체 티셔츠들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손편지 카드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들이닥칠 텐데 손편지를 쓰고 있으려니 마음이 바빠진다. 그냥 “웰컴! 사랑해♡” 같은 문구를 라벨에 인쇄해서 쭉 붙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누군가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느새 교사들은 아이들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수련회 장소에 먼저 도착한 선발대 교사들은 부지런히 웰컴 스낵 봉지를 준비했다. 급하게 과자들을 담다 보니 봉지마다 내용물이 제각각이다.

“누군 새우스낵을 좋아하고, 누군 감자스낵을 좋아할 텐데. 싸우면 어쩌지?”

결국 봉지를 하나하나 풀어서 종류별로 스낵이 골고루 들어가게 다시 쌌다. 정성 들여 묶은 100개의 봉지를 예쁜 리본으로 마무리한 뒤 숙소 방마다 배치해 뒀다.

드디어 첫 예배가 시작됐다. 아이들과 교사들은 함께 어울려 큰 소리로 찬양하고, 율동을 하며 땀을 흘렸다. 한바탕 축제 같았던 예배가 끝나자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간식시간이다. 메뉴는 피자였다. 교사들은 열심히 30판의 피자를 테이블마다 놓아뒀지만, 이번에도 피자 종류가 다 달라 고민이다. 어떤 테이블에는 치즈 피자만 있고, 또 어떤 테이블에는 감자 피자만 있다.

“각자 먹고 싶은 피자가 다를 텐데, 어쩌지요?”

결국 교사들은 피자 박스를 전부 회수하고, 종류별로 섞어서 다시 배치했다. 피클도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미리 봉지를 뜯어 두었다. 이번에는 정말 외치고 싶었다.

“아니,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그런데 이 말은 아이들이 계단을 내려오며 환호성을 지르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다. 왁자지껄 피자를 나눠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문득 쌓인 피곤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밤이 돼도 교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늦은 밤까지 큰 소리로 아파트 게임을 하고, 몰래 TV를 보는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한숨 돌릴 새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 깜박할 사이에 2박3일이 지나갔고, 아이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교사들은 다시 교회 사무실에 모였다. 이번엔 남은 짐과 물품들을 정리할 차례다. 가져갔던 물품, 교회에 남아 있던 재고, 새로 넣을 물건들을 따로 분류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박스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번엔 정말 말해야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그런데, 부장교사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하나씩 나눠주며 말한다. “선생님들, 남은 물품 중에 필요하신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사무실에 꼭 필요한 일회용 컵을 집어 드느라 그만 하려던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단체 채팅방으로 수련회 사진과 영상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활짝 웃는 모습, 친구들과 장난치는 표정. 사진들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 순간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문득 알 것 같았다. 우리가 바란 건 그냥 ‘수련회 잘 치렀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사랑받았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음을.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