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더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구나 싶다. 아니, 이제는 그보다 더한 표현이 생겨날 법한 날들이 이어진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장대비가 나라 곳곳에 시름을 안기더니,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무더위는 사람들을 금세 지치게 한다. 햇볕은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대지에 내리꽂히고, 달궈질 대로 달궈진 거리에 그림자마저 검게 눌어붙는 듯한 느낌이다. 한 뼘 폭의 가로등 그늘에 몸을 숨긴 고양이에게도 이 여름은 벅차 보인다. 나뭇잎은 숨을 죽인 채 바람 한 점을 기다리지만, 뜨거운 공기 덩어리는 미동도 없다. 도시의 에어컨은 열기를 밀어내느라 바쁘고, 왱왱 돌아가는 실외기 소리가 종일 그치질 않는다.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해마다 여름은 전년보다 더 뜨겁고 무자비하다.
어쩌지 못할 더위에 치여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행선지는 유년 시절부터 가족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여름에는 덕유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공기와 옥구슬처럼 맑은 계곡이 있었다. 흙냄새와 풀 내음 실어나르는 산들바람을 맛볼 생각에 출발 전부터 설렜다. 하지만 얇은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서늘했던 그곳도 뜨겁긴 마찬가지였다. 기억 속 여름을 상실했다는 씁쓸함과 더는 그 여름을 살아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잠시. 생명체로서의 본능적인 두려움이 와락 몰려왔다. 앞으로 살아갈 여름이, 인공의 바람과 차가운 음료에 의존하며 필사적으로 견디고 버텨야 하는 생존의 계절이 돼 버렸다는 게 무서웠다.
태양의 기세가 꺾인 저녁 무렵, 미지근하게 식은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여느 해처럼 이 여름도 곧 지나갈 테지만, 삶의 리듬마저 어그러뜨리는 불가항력의 폭염을 모두가 무사히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 한 조각에 희미해진 여름의 정취가 스민다. 매미 울음이 기운차서일까. 지난 시절을 물들였던 여름의 색채와 낭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고 만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