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10) “주님, 고국 떠나 상처로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해 주세요”

입력 2025-08-01 03:06
고정희(둘째 줄 왼쪽 두 번째) 이성로(앞줄 오른쪽) 선교사 부부가 2012년 일본 도요타시 메구미교회 성도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고 선교사 제공

교회 뒷마당에 공터가 있었는데 남편이 땅을 갈아 텃밭을 만들었다. 오이 상추 가지 고추를 심고 깻잎 씨도 구해서 뿌렸더니 신기하게도 매년 깻잎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은 깻잎을 먹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가 살던 도요타시는 한겨울에도 영상 기온이었기에 텃밭엔 언제나 채소가 있었다.

당시 섬긴 교회는 대부분 한국 여성과 일본 남편, 그들의 자녀로 구성됐다. 반세기 전 한국 여성들이 이 땅에서 일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비자를 받지 않은 채 40년 가까이 살아온 할머니도 있었다. 얼마나 한국이 그리웠을까.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해준 음식들을 기억하면서 소박하지만 마음을 담은 음식을 나누고 싶었다.

이들의 사연은 참 아픈 내용이었다. 일본에 와서 우리 한국 여성들을 보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셨다. ‘주님 이 땅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국 여인들과 그들을 품은 남편들, 그리고 또 다른 상처로 아파하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따뜻한 주님의 손으로 위로해 주세요.’

금요일에는 교회 다다미 쪽방에 모여 밤이 새도록 삶을 나눴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도했다. 해가 눈 부신 아침이 되면 텃밭에 나가 채소를 따서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이들은 교회에 오면 한국말을 사용해서 좋고, 어릴 때 먹던 나물 반찬을 먹어서 좋다고 했다.

도요타시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도시라 브라질인과 페루인들도 교회를 찾았다. 그들은 일본어를 못 했기 때문에 언어 소통이 어려웠다. 멀리 일본 땅에 와서 외로이 노동하면서 주일이 되면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보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평안과 안식을 부어주시길 함께 기도했다. 그렇게 일본 땅에서 이 땅의 사람들과 동행하며 살고 있었다.

2013년 7월 태풍이 일본 전역에 들이닥쳤다. 교회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강했다. 한 시간쯤 떨어진 지역에 계신 목사님으로부터 도요타시 옆 도요하시시에 온 선교팀 열 명을 하룻밤 재워줄 수 있느냐는 다급한 연락이 왔다. 태풍 때문에 나고야 공항에 이착륙하는 모든 비행기의 일정이 지연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인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차량으로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그 팀이 지금 교회에 있다고 했다. 남편은 “이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음식을 대접해 주고 싶다”고 했다.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왠지 태풍이 가져다준 선물 같았다.

빠르게 일본식 카레를 만들었다. 팀원들은 처음엔 금식 중이라며 사양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맛있게 먹었다. 갑작스럽게 신세 지는 게 미안해서 금식이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아웃리치 팀이 오면 난 일본식 카레를 만들어 대접했다. 이들과 교제하면서 이스라엘을 품고 기도하는 사역도 알게 됐다.

일본 땅에서 만난 이 한국인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질문도 받았다. “이성로 목사님 고정희 사모님 혹시 북한의 영혼들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