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기존에 통보받은 고율 관세를 낮추는 대신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와 에너지 수입,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EU·일본과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자원·무기 구매를 투자 패키지와 조합한 미국의 요구가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무역 합의를 체결한 뒤 만족한 듯 “지금까지의 협상에서 가장 큰 거래”라고 자평했다. 유럽 언론들도 트럼프의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무역 담당 관리들이 수개월간 준비한 대미 협상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중국과 캐나다가 보복을 예고하며 맞선 것과 다르게 EU는 회원국 간 엇갈린 입장 탓에 고통 감수를 택했다”고 지적했다.
EU는 지난 22일 무역 합의를 먼저 끝낸 일본보다 더 많은 돈을 미국에 내주게 됐다. EU는 일본(5500억 달러)보다 많은 6000억 달러(8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7500억 달러(1036조원)어치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트럼프 행정부에 약속했다. 일본의 경우 미국산 에너지 수입액을 정하지 않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미국과 합작 벤처로 진행할 계획만을 수립한 상태다.
EU는 또 미국에 자동차 시장도 사실상 전면 개방한다. EU 집행위 고위 당국자는 28일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최혜국대우에 따른 미국산 자동차 관세를 (현행 10%에서) 2.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이를 0%까지 내릴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미국이 유럽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27.5%의 관세율을 15%로 인하하는 대가로 EU가 미국에 자동차 시장을 열어준 것이다. 일본 역시 미국에 쌀과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는 대가로 자국산 자동차 관세율을 절반으로 내렸다.
한국도 EU·일본처럼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세율 인하 조건으로 대규모 투자 패키지나 시장 개방을 요구받을 수 있다. 투자 패키지에서는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EU·일본처럼 수백조원대 대미 투자로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EU와 합의 과정에서 에너지와 함께 제시한 군사 장비 구매 요구도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미국은 현재 한국에 대해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를 비롯한 농산물과 자동차 수입 확대와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