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창고?… 글로벌 명품업계, 한국만 ‘N차 가격 인상’

입력 2025-07-29 02:06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입점한 루이비통 매장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구찌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가격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부진에 빠지며 가격인상을 자제하는 것과 대비된다. 업계에선 “한국이 명품업계의 ‘현금 창고’가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올해 상반기 LVMH의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2% 줄었다고 보도했다. 매출도 4.3% 감소한 398억 유로(약 64조4520억원)에 그쳤다. 몽클레르의 올해 2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1% 줄었다. 구찌를 보유한 케링그룹은 17%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명품시장 ‘큰손’인 중국의 소비 위축, 미국 관세 압박, 유럽 경기 둔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탓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는 올해 글로벌 명품 시장이 최대 5% 역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품 브랜드는 실적 악화로 인해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률은 평균 3% 수준이다. 201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다른 가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디올은 지난 1월 주얼리 가격을 6~8% 올린 데 이어 이달에 3~5% 추가 인상했다. 프라다는 지난 2월에 이어 이달 일부 제품별 가격을 5~7% 올렸다. 에르메스는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가방과 액세서리 등 주요 품목 가격을 최대 10%까지 인상했다.

명품 브랜드가 한국에서만 가격을 올리는 배경엔 최근까지 지속된 ‘원화 약세’가 자리한다. 지난해 말 터진 계엄과 관세 이슈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원선에 육박했다. 금값 상승까지 겹쳐 수입 원가가 올라가는 바람에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한국 소비자의 ‘명품 충성도’도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명품 브랜드 유통업체 블루벨 그룹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73%는 “가격이 올라도 명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명품을 투자 상품으로 본다는 인식도 76%에 달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