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살아있는 신학교… 나는 예수님의 행복한 노예”

입력 2025-07-29 03:05
노무라 모토유키(왼쪽) 목사가 2010년 방한 당시 제정구 의원의 부인 신명자 여사와 대화하고 있다. 국민일보DB

1970년대 서울 청계천에서 빈민구호 활동을 펼쳤던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4세.

28일 푸르메재단에 따르면 노무라 목사는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고 지난달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26일 소천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치르지 않는다.

1931년 일본 교토 출생인 노무라 목사는 도쿄수의축산대학, 미국 켄터키성서대학, 남동부기독교대학, LA 바이올라대학, 페퍼다인대학원 등지에서 수학했다. 그는 68년 한국을 방문해 청계천 빈민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 빈민선교에 나섰다. ‘빈민운동의 대부’ 고(故) 제정구 의원을 도와 85년까지 한국을 50여 차례 방문하면서 청계천 판자촌 빈민들을 대상으로 구제 및 선교활동을 펼쳤다.

노무라 목사는 어머니가 물려준 도쿄의 자택까지 팔아 빈민 구호에 나섰고, 일본은 물론 독일 뉴질랜드 등 해외에도 도움을 요청해 탁아시설 건립과 의료 지원에 힘썼다. 그가 당시 청계천 빈민을 위해 지원한 금액은 약 7500만엔(약 7억원)에 달한다.

그는 청계천 동대문시장 구로공단 등지의 현장을 발로 뛰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남긴 사진 자료는 총 2만점에 달하며, 2006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됐다. 이 공로로 2013년에는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무라 목사는 2011년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글에서 “내가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성인으로 성장하고, 청계천 빈민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내 의지가 강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었다”면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살아있는 신학교였던 청계천 빈민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혜였다”며 “목사는 한 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예수님이다. 나는 예수님의 노예일 뿐이다. 하지만 행복한 노예”라고 전했다.

2012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사죄의 의미를 담아 플루트로 홍난파 가곡 ‘봉선화’를 연주하는 모습. 국민일보DB

‘청계천의 성자’로 불리던 그는 생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만행에 대해 한국인에게 사과했다. 2012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무릎을 꿇고 헌화하며 일제의 과거사에 대해 속죄했다. 이 일로 일본 내 극우 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으나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노무라 목사의 사랑은 장애 어린이로도 이어졌다. 2009년 동화작가 임정진씨의 소개로 푸르메재단을 알게 된 그는 매해 재단을 찾아 장애 어린이와 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을 기부해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도왔다.

노무라 목사는 생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이웃 사랑을 제1계명으로 전했다. “예수님은 일생 로마나 유대, 그 어떤 세상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소외되고 눈물 흘리는 이웃과 함께해야 합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