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김창수’(이원태, 2017)는 백범 김구 선생의 청년 시절을 다룬 영화인데 김창수는 선생의 본명이다. 영화는 청년 김구가 21세이던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자객 중의 한 사람인 쓰치다 조스케를 응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 때문에 살인죄로 인천 감리소에 갇혔다. 하지만 김창수는 거기에 있는 죄수들과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 당시 상당수의 지식인과 정치인은 이미 일본에 협력하고 종속된 상태였다. 당연했다. 나라를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지식인의 변질은 변절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화 ‘암살’에서 변절자 염석진(이정재)이 자신의 변절에 대해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고 했던 말처럼 말이다. 그 시대의 변명이었다. 일반 백성도 매한가지였다. 어느 날 감리소에서 비참한 삶을 절망하던 한 죄수가 자살했는데 그 죽음 앞에 조선인 재소자들은 그 죽은 자의 깨끗한 짚신과 그가 입었던 옷을 가지려고 서로 싸운다. 그 시대의 희망 없음과 그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친일 조선인 감리소 소장(송승헌)도 그렇게 말한다. “안 바뀐다. 이 나라가 그래. 그냥 다른 놈들처럼 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 그럼 편하잖아.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이런 인식이 이유였다. 친일 매국의 길을 걷는 이유였다. 그때 죽을 지경에 있던 청년 김구가 하던 말이 기막혔다.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해서 하는 거다.”
오늘 우리 세상은 대표적인 진화론적 세계관,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곧 강자 중심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부정적 측면에서 자연도태가 이뤄지고 있다. 작은 교회들이 몰락하고 가난한 자들이 더 가난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바로 그 시절을 견뎌냈고 이겨냈다. 거기에 김창수, 곧 청년 김구 같은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청년 김구는 스무 살에 예수를 믿은 후 황해도 장연에서 학교를 설립해 계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에 감리교 엡워스(Epworth)청년회 총무 자격으로 상동교회 청년회 주최 을사조약반대 전국 대회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김구 외에 안창호 김규식 유관순 윤동주 서재필 남궁억 이상재 이승훈 이동휘 심훈 이상설 주시경 등 헤아릴 수 없는 크리스천이 우리나라를 살린 것이다.
하나님 때문이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고전 1:27) 하신 하나님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아모스는 뽕나무를 치던 자였고 느헤미야는 술 관원, 요셉은 노예, 다윗은 불륜을 범한 살인자였다. 또한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들 역시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영화에서 청년 김구의 고백처럼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해서 하는 거다”가 이유였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이같이 일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언제나 크리스천은 세상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사라지고 있다.
이미 예수 없는 강자의 논리에 교회가 감염됐다. 예수 그리스도, 고난받는 종으로서 예수를 거부하고 강한 예수, 강한 기독교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 교회는 사라지고 세상 기업 같은 교회로 변하고 있고, 예수를 좇는 크리스천은 사라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속물 크리스천이 많아지고 있다. 오늘 이 세상을 살릴 길이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하정완 목사 (꿈이있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