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피해 금액은 전년(4472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8545억원으로, 올해 1조원 넘는 건 시간 문제다. 이에 늦었지만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금융보안원과 함께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을 올해 안에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 통신사, 수사기관에 흩어져 있던 대응체계를 한데 모아 인공지능(AI) 기술로 범죄를 사전 식별하고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돌리며 의심 계좌를 막아왔지만, 사례 축적도, 정보 공유도 제한돼 있어 조치는 늘 뒷북이었다. 따라서 이번 AI 플랫폼은 금융·통신·수사기관의 의심 계좌와 피해자 연락처 등 데이터를 통합하고, AI 분석을 통해 고위험 패턴을 사전 탐지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미 국경 너머에 거점을 두고 한국어에 능통한 인력을 고용해 국내 금융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든다. 검찰과 경찰이 합동 수사단을 꾸려도, 외국 정부 공조 없이는 범죄 수익 추적이나 조직 해체는 난망하다. 국외 범죄자에 대한 신속한 송환, 계좌 동결을 가능케 하는 국제공조 체계를 병행해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층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고령층은 ‘앱 설치 유도형’ 보이스피싱이 치명적이다. 예방 교육도 중요하지만 금융사와 통신사가 악성 앱 설치를 차단하거나, 실시간 경고 기능을 강화하는 기술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AI 플랫폼 구축 이후에도 예방-차단-구제-홍보를 아우르는 후속 대책을 순차적으로 내놓겠다고 한다. 실효성을 높이려면 금융회사에 대한 책임 부여와 구제 절차의 간소화도 함께 가야 한다. 피해자들이 길고 복잡한 구제 절차에 지치지 않도록, 피해금 환급 시스템을 더 빠르고 촘촘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술과 제도, 국제 공조, 그리고 사람을 향한 섬세한 관심 등 3박자가 골고루 갖춰져야 한다. 보이스피싱과의 싸움은 속도와 정밀함의 싸움이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