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동안 반복된 의정 악순환
정부 백기투항으로 끝난 과거
의사 ‘무패 신화’ 과거 경험 탓
전 세계 AI에 열광하고 있는데
우린 여전히 ‘의대 미친 사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못 벗어나
특혜 속 재발 방지 약속 없어
환자·국민 아랑곳없는 행동
이런 ‘괴물’ 누가 키운 건가
정부 백기투항으로 끝난 과거
의사 ‘무패 신화’ 과거 경험 탓
전 세계 AI에 열광하고 있는데
우린 여전히 ‘의대 미친 사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못 벗어나
특혜 속 재발 방지 약속 없어
환자·국민 아랑곳없는 행동
이런 ‘괴물’ 누가 키운 건가
#1패/2000년은 의정갈등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다. 김대중정부는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라는 슬로건 아래 의약 분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의료계의 반발은 거셌다. 4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었고, 사상 첫 휴진 등으로 맞섰다. 정부는 “일방 양보는 없다”는 방침이었지만, 결국 전면 파업이 예고된 날을 하루 앞두고 수많은 ‘당근책’을 내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수가 인상, 전공의 보수 개선 등과 함께 의대 정원 10% 감축에 합의한 것이다. 이때의 정원 감축은 나중에 의사 인력 부족을 불러왔다. 이후 의대 정원은 2003년 3253명, 2005년 3097명, 2006년 3058명까지 줄었다.
#2패/2014년 박근혜정부는 원격 의료 도입을 추진했다.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면 지방 의료 문제를 일부 해결하고, 의사 수 부족 현상도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에도 의사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원격 의료 등에 반대하며 전국 의사 총파업을 주도했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결국 정부는 원격 의료 도입을 철회했다.
#3패/2018년 문재인정부는 작정하고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커지는 필수의료 공백에 향후 단계적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형태의 공공 의대를 신설하기로 하고, 2023년 개교를 목표로 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협의 제동에 공공 의대법은 국회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4패/2020년 공공 의대법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보건 인력 확충 필요성을 느낀 문재인정부의 400명 증원안과 함께 다시 나왔다. 정부와 여당은 공공 의대 신설과 더불어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내밀었다. 이에 반발해 의료계는 수술실, 응급실 등 필수인력까지 모두 포함한 전면 파업에 나서면서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상황은 2000년 당시와 비슷했지만,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고, 정부와 의사단체는 코로나 사태가 지나고 원점에서 증원을 재논의하자는데 합의했다. 정부의 항복 선언인 셈이었다.
#5패/2024년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전격 발표한다. 2025학년도 모집 인원이 4567명으로 늘었지만, 의료계의 1년5개월간 반발로 내년도 모집 인원은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회귀했다. 이어 유급 대상이 된 의대생 8000여명의 복귀를 허용하고, 본과 3·4학년생을 위한 추가 의사 국가시험을 시행하는 내용의 각종 특혜 조치도 쏟아졌다. 의대생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역시 정부의 백기 투항이었다.
5전5패. 의정갈등 상황마다 결과는 의사들의 완승, 정부의 완패였다. ‘의사 불패’가 달리 나오는 말이 아니다. 정부와의 대립 때마다 전공의는 물론 선배 의사인 개원의 단체,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 교수들까지 집단 행동에 나서는 데에는 이런 ‘무패(無敗) 경험’이 뒤에 깔려 있다.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부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백기 투항을 하곤 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의료계엔 엄청난 ‘자신감’을 준 꼴이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AI)에 열광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의대에 미친 사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환경도 선민 의식에 사로잡힌 의사들이 무패 신화를 이어가는 데 한몫했다.
2014년 투쟁을 이끌었던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이번 의정갈등이 한창일 때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다.” 의대생 동맹휴학을 다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런 글들이 많았다. “휴학계 내더라도 실제 1년 유급 안 된다. 다 올라갈 수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하다.” 이들의 공언은 결국 모두 현실이 됐다. 온갖 특혜 보따리를 덤으로 받고도 전공의들의 뒤늦은 사과 외에 재발 방지 약속은 없다. 정부는 해주면 고맙다고 애걸하고 있다. 특혜 논란에도 교육부는 “아이들(의대생) 상처 보듬어야 할 때”라고 했다. 보듬어야 할 대상은 1년 반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낸 환자들과 국민들이다. 나그네 주인 쫓는 격이다. 이런 ‘괴물’, 누가 키운 걸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