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직 한·미 FTA 포기할 때 아니다

입력 2025-07-29 00:30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집권 이후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적용하는 상호관세를 들고 나왔다. 이 관세 정책은 전후 국제 통상질서의 핵심인 최혜국대우(MFN) 원칙을 붕괴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마저 무시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에도 각각 25%와 30%의 상호관세를 예고한 뒤 15% 수준으로 협상을 타결하고 대규모 투자를 유도했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이 협상에 나설 경우 일본, EU처럼 15% 상호관세 수용과 대규모 투자 약속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지도 반출 등 민감한 요구도 예상된다.

문제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트럼프식 거래는 언제든 번복되거나 추가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도 양측 설명이 엇갈린다. EU와의 관세 합의 역시 의약품 포함 여부를 두고 입장이 다르다. 트럼프가 직접 개정하고 양국 의회가 비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조차 무시된 상황에서 새 협정의 이행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트럼프가 상호관세 추가 인상 압박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반도체 관세 포함 여부도 불확실하다. 협상에 나서는 정부 입장에선 큰 불확실성을 떠안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다만 시간이 트럼프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헌법상 재출마가 불가능한 그의 임기는 2029년 1월까지이고, 상호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행정 혼란은 미국 내 반발을 키우고 있다. 이보다 앞서 판결이 기다린다. 관세 부과 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미 헌법에 따라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국제무역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다. 현재 항소 중이지만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갈등, 엡스타인 리스트 등은 트럼프 지지층을 흔들 수 있는 변수다.

물론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한·미 FTA의 전략적 가치와 법적 안정성은 더욱 부각된다. 한국은 무관세로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232, 301조 같은 고관세 조치가 유지돼도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거센 지금 한·미 FTA는 한국의 든든한 방패다.

최근 캐나다·멕시코 정상이 USMCA 존중을 재확인한 점도 참고할 만하다. 한국 역시 무리하게 상호관세를 수용해 한·미 FTA를 스스로 훼손하기보다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를 고려해 최소한 올 가을까지는 신중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협상 타결에만 매달리기보다 한·미 FTA 준수 의지를 국제사회와 미 의회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면충돌은 피하되 트럼프 1기 때 개정된 한·미 FTA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일부 양보를 포함한 절충안을 검토해 볼 수 있겠다. 예컨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에 월령 표기를 도입해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고령 한우 농가에는 피해 보상책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상호관세가 현실화되면 한·미 FTA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패널 설치를 요청하고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검역·통관 지연 등 비관세 대응도 가능하다. 아울러 오는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는 기회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초청 등을 통해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중 외교를 활용한 간접 압박도 병행할 수 있다. 지금은 타협과 견제, 다자 외교를 조화시키며 트럼프 대통령 이후까지 내다보는 전략적 균형점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31일 협상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