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모두 비슷한 하얀 가운을 입지만 전공에 따라 분위기와 표정이 묘하게 다르다. 병원에서 마주치는 의사들을 보면 때론 그들의 전공만으로도 성격을 어렴풋이 상상하곤 한다. 물론 편견일 수도 있지만 전공은 사람의 말투와 표정까지도 바꾸는 힘이 있는 듯하다.
가령 정형외과 의사는 뼈와 관절을 다룬다. 큰 수술 도구와 철심, 물리적인 작업이 많다 보니 체격도 크고 말투도 단단할 것 같다. 환자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단호함이 필요한 탓일까. 그들에게서는 우락부락한 인상 속에 확신 어린 말투가 느껴진다. 가벼운 농담이지만 이들에게는 약간의 ‘기계적 감성’이 있다는 말도 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와 척추를 다룬다. 몇 밀리미터의 오차가 생명을 가르는 세상이다 보니 이들은 긴장과 집중 속에서 살아간다. 신경외과 의사에게선 예민함과 날카로움, 조용하지만 깊은 책임감을 품은 분위기가 전해진다. 말수가 적고 쉽게 웃지 않지만 진중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내과 의사는 오래된 삶의 흔적과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환자의 몸 속 수치를 읽어내고 조용히 삶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간다. 내과 의사들은 차분하고 조심스러우며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다. 그들에게는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 진료실에서 울거나 도망치려는 아이를 달래려면 의학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아이를 안심시키는 눈빛, 약간의 장난기, 보호자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따뜻한 공감력이 그것이다. 소아과 의사들이 친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보호자까지도 아이를 대하듯 하는 섬세한 모습에서, 어쩌면 ‘엄마 아빠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각 과의 의사는 자신이 다루는 대상과 진료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물론 모두가 정해진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오랜 시간을 거쳐 자신이 하는 일을 닮아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병원을 찾을 때 의학적 처방만이 아니라 의사의 ‘인간적인 기운’까지 받고 돌아오는 건 아닐까. 차가운 청진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 따뜻한 손길이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안심시키고 있으리라 믿는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