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회 활동을 통해 만나본 많은 폐암 환우들은 “여러 번 담배를 끊으려 했지만 인내심 부족으로 실패했다”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흡연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강한 중독성을 가진 행위다. 니코틴은 뇌에 직접 작용해 구조적·기능적 변화를 만드는데, 금연이 매우 힘든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사회는 흡연으로 인한 질환의 책임을 환자 개인에게만 묻고 있다. 중독물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담배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의는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국내외 연구를 통해 흡연이 폐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라는 점은 입증돼 왔다. 특히 폐암은 흡연과의 인과성이 가장 확실하게 밝혀진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 등은 흡연을 폐암의 가장 강력한 원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래 전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폐암 말기의 쉰 목소리로 “담배 그것은 독약입니다”라고 호소했던 TV 공익광고를 기억하는 분이 많다. 이렇듯 ‘흡연이 폐암의 직접 발병 원인’이라는 것은 의료 전문가뿐 아니라 국민적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우리나라 법원에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해외에서는 캐나다 퀘벡주 집단소송, 미국 다수 주 정부 소송 등에서 담배 제품의 설계와 마케팅 전략이 소비자의 중독성을 높이도록 고안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흡연 피해에 대한 담배회사의 책임이 인정됐다. 반면 국내에서는 담배회사의 폐암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담배로 인해 국민들이 입은 막대한 피해를 과연 누가 부담하는 게 정의로운가에 대한 문제 제기다. 2023년 우리나라 폐암 사망자는 1만8646명이고, 흡연은 폐암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므로 원인 유발자인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세계적 암 전문의 김의신 박사는 암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면 담배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는 강력한 소신을 밝혔다. 특히 간접 흡연도 직접 흡연 못지않게 해롭기에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한 소송은 흡연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건강을 위한 소송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담배 유해성 관리에 대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는 등 제도 변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공단의 담배 소송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다면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사회로 나아가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법원도 이 소송이 갖는 의미와 무게를 충분히 숙고해 사망률 1위인 폐암 발생을 줄이는 획기적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담배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에 와 있다. 공단의 담배 소송이 그 첫걸음이 되고, 더 많은 국민과 여러 기관·단체가 이 여정에 동참하고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조정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