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살던 마을 호미에는 아들의 학교 친구가 있었다. 브라질계였는데 아들이 태권도 유단자인 줄 알고 현지에서 태권도를 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해줬다. 일본에서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아들은 2012년 동일본 태권도대회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일본 전국대회에서 3위를 했다.
일본어를 쓰는 또래들과 온종일 학교생활을 한 아들의 언어 습득 속도는 빨랐다.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교여서 오히려 숨돌릴 틈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맞춰서 인도하셨다. 한국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끈 한류의 영향 덕에 아들 옆에는 3년 내내 친구들이 많았다. 서른이 넘은 아들은 요즘에도 그때의 학창시절을 가장 많이 추억한다.
일본 대학입시는 대부분 추천제였다. 고등학교에서 연관된 대학에 학생을 추천하면 입학을 받아주는 방식이었다.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는 일본에서 학력 수준이 낮았기에 추천할 수 있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나고야에 있는 한 대학의 국제학부로 추천을 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전교생이 놀랄 정도로 큰 업적이었다. ‘히라가나도 모르고 온 연종이가 일본 대학에 들어가다니….’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됐다.
일본은 중학교까지가 의무 교육이기에 딸은 일본어를 못 했지만 오빠보다 수월하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청은 초등학교 1학년 수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초등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미안했다. 딸이 잘 견뎌주길 기도했다. “귀여운 일본 애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괜찮다”고 밝게 답해줬지만, 좋기만 했을 리 없었다. 언젠가 딸 머리에 동전만 한 원형탈모가 발견됐다. “엄마, 송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한국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였다. 휴대전화로 쉽게 연락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딸의 눈물에 가족 모두가 울었다.
뒹구는 낙엽만 봐도 자지러지게 웃는다는 청소년기 시절을 낯선 땅에서 보낸 딸은 친구도 없고 재밌는 TV프로그램도 없이 지내며 자연스레 학업에 전념하는 아이로 자랐다. 학업 쪽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딸을 이끄셨다. 나보다 내 딸을 더 잘 아시는 주님이 이렇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하나님은 딸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부터 천천히 배우게 하시면서 일본어를 정확히 익히도록 해주셨다.
“엄마, 저도 실컷 웃어보고 싶어요.” 일본에 오기 전 친구들과 만나면 배꼽이 빠질 것 같이 웃던 아이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또래와 어울려 웃어도 그렇게 웃기지 않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런 딸을 한국의 기독교대학인 한동대로 보내시며 위로하셨다. 그리고 다시 웃게 하셨다. 2020년 대학을 졸업한 딸은 현재 일본어 번역과 통역 선교사로 헌신하며 고베에서 지내고 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