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일(8월 1일)을 하루 앞두고 한·미 재무 수장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2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오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최종 담판 성격의 ‘1+1 회담’을 갖기로 했다. 회담 장소는 미 재무부 청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같은 날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미국 현지에서 실무 협상을 진행한 통상 당국에 이어 재무·외교 라인이 총출동해 트럼프 행정부와 마지막 총력전을 펼치는 것이다.
한·미 재무 수장은 지난 25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및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동석하는 ‘2+2 통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선트 장관 측이 ‘긴급한 일정’을 이유로 24일 구 부총리 출국 1시간 전 돌연 회담을 연기하면서 한국의 대미 협상 순번이 뒤로 밀렸다. 결국 관세 데드라인(마감일)을 하루 앞둔 시점으로 회담 일정이 다시 잡혔다. 베선트 장관이 오는 28~29일 스웨덴에서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회담을 하는 점이 반영됐다고 한다.
한·미 재무·외교 수장 간 회담은 미국의 상호관세(한국 25%) 및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 인하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제조업 협력’ ‘비관세 장벽 완화’ ‘대미 투자 확대’라는 3대 쟁점이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오른 가운데 벼랑 끝 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한국 협상단이 제시한 제조업 협력 강화 방안에 미국 측이 ‘상당한 관심’(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나타냈지만 최종 담판에선 농산물 수입·대미 투자 등 민감한 사안이 얽힌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만큼 막판까지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정부 협상단은 일본의 대미 협상 결과(상호·자동차 관세 15% 인하)와 유사한 수준의 합의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미국과 무역 합의를 맺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은 공통으로 비관세 장벽 완화 및 대규모 투자 계획을 대가로 내줬다. 2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될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협상 결과도 한·미 관세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호관세 코너에 몰린 한국으로선 조선 등 제조업 분야에서 ‘협력’ 이상의 제안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정부는 그간 조선업·반도체·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미국 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가 비관세 장벽 완화, 대규모 대미 투자 등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정부의 플러스알파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한 국제통상 전문가는 “(한국 제조업 협력은) 도널드 트럼프 시각에선 당연한 것”이라며 “자국민에게 내세울 트로피를 일정 부분 내줄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은 ‘농산물 수입 확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상호관세를 32%에서 19%로 낮추는 대가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사실상 철폐했다. 일본도 관세 인하를 위해 미국 쌀 수입 확대를 결정했다. 미국과 협상을 앞둔 호주는 20여년 만에 먼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빗장을 풀었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산 쌀 수입 확대를 위해선 미국 등 5개국과 맺은 저율할당관세(TRQ) 협정의 국가별 쿼터를 재조정해야 한다. 미국 외 4개국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도 2008년 광우병 논란과 같은 정치·사회적 후폭풍 가능성이 크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준수를 요구하며 실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의 막대한 투자 요구도 풀기 힘든 대목이다. 애초 정부는 1000억 달러 이상의 현지 투자 제안을 준비했지만 미국은 일본(5500억 달러)과 유사한 4000억 달러 수준의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과 미국도 투자 형태·방식 등을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 정부 협상단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500억 달러는 일본 정부의 1년 치 세수보다 많은 금액”이라며 “이 돈은 정부계열 금융기관의 출자·융자·보증 등으로, 기업이 대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양민철 이누리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