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의 통상·안보 패키지딜 추진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통상 부처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고위급 대화에선 패키지딜에 대한 협상 공감대가 있었으나 미 부처 당국자들은 관세·비관세 영역에서의 더 많은 협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선업 등 투자 확대와 비관세 장벽 완화 등 해당 분야 카드를 보강하는 한편 안보 협력 강화를 ‘플러스알파’로 제시하면서 막바지 협상에 돌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7일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국무부 채널과는 우리의 강점인 ‘안보 패키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제안을 했고 충분히 소통했다”며 “그러나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 경제·통상 쪽 인사들은 안보 협력 주장을 이해는 하지만 경제·통상 분야에서 추가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 및 비관세 협의에 내밀 수 있는 카드를 추가해 패키지를 조정한 뒤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방미 당시 앤디 베이커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만나 안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에 거론되는 핵심 인사다. 위 실장은 “안보 분야의 안정적 에너지가 다른 분야에 선순환 효과를 주는 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한·미 협상의 축은 미측 통상 파트의 ‘실세’로 불리는 러트닉 장관 채널로 옮겨진 상태다. 러트닉 장관이 정부 예상보다 강하게 개입하면서 조선업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통상현안회의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사저 회담 결과를 보고받고 “미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양국 간 조선 협력을 포함한 합의 방안을 만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특히 대미 투자 규모 확대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관측된다. 러트닉 장관은 미·일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550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안을 도출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당초 준비한 1000억 달러 패키지의 5배 이상 규모다. 정부 소식통은 “일본 투자안엔 보증이나 대출까지 포함됐지만 우리의 1000억 달러 투자안은 순수 투자 규모”라며 “우리도 전체 투자 규모를 늘릴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농축산물 비관세 장벽 완화 등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러트닉 장관 외 다른 플레이어도 상황에 따라 판 전체를 엎어버릴 수 있다”며 “협상 상대국 내막을 정확히 모르는 가운데 누가 실세라고 단정하면 그 지점에서 오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실을 비롯해 범정부적 차원의 협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자칫 어느 한 곳에만 집중하다간 딜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동환 최예슬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