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기준에 ‘돈’ 놓였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 하시나요”

입력 2025-07-28 02:15
소설가 김애란은 지난달 20일 일곱 편의 단편을 수록한 ‘안녕이라 그랬어’를 발표하고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묶어 놓고 보니 이 시기에 ‘돈과 이웃’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며 “금융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압도했을 때의 박탈감은 세대를 불문하고 공통된 것이었음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재 제공

소설가 김애란이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에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로 돌아왔다. 작가는 반지하 단칸방, 고시원, 편의점 등 현대인의 일상 공간을 통해 청년 문제와 인간 소외를 그려왔다. 이번엔 그의 시선이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김애란은 사회학자다”라는 평가를 빌리자면, 이번 작품집은 ‘공간의 사회학’을 한층 심화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3일 국민일보에서 만난 그는 이번 소설집에 대해 ‘작가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감각이 들었다’거나 ‘김애란이 동시대 작가여서 반갑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겐 이미 훌륭한 고전들이 있지만, 지금의 이야기를 지금의 언어로 듣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 내가 건넨 이야기가 상대에게 잘 도착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단편집에는 문학동네 2019년 여름호에 실린 ‘숲속 작은 집’부터 지난해 발표한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까지 7편이 수록됐다. 처음부터 특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개별 작품들이 먼저 쓰였고, 이후 엮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통된 결이 드러났다. 그는 “이번 책은 ‘돈과 이웃’이라는 열쇳말로 풀이됐지만, 쓸 당시에는 그것이 큰 주제가 될 줄 몰랐다”며 “묶어 놓고 보니, 이 시기에 내가 어떤 질문을 많이 던졌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2020년대 전반기 시간이 “이웃은 왜 한 가지 얼굴이 아닌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이웃은 원래 한 가지 얼굴이 아니다”는 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국은 다양한 이웃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경험이 많은 역사를 가졌다”며 “그 집합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가치를 지향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결정과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 선택의 기준에 말 그대로 ‘돈’이 놓였을 때 생겨나는 여러 마음을 살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수록된 ‘홈 파티’는 코로나로 일감이 끊긴 연극배우 이연이 지인을 통해 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 동기생들이 저택에서 벌이는 파티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저녁 시간 내내 미묘한 계층 차를 느끼던 이연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시설에서 나올 때 받는 500만원으로 명품을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참석자의 말에 “밥은 안 먹어도 표는 안 나지만, 옷은 보이니 수치심과 생존 전략 때문일 수 있다”고 맞받는다. 청년의 소비를 ‘금융 문맹’의 결과로 규정하고, ‘어려운 처지일수록 아끼고 투자해야 한다’는 당위로 마무리하는 시선을 이연의 입을 빌려 반박한다. 작가는 이렇게 명품 소비 이면에 담겨 있는 청년 세대의 수치심과 박탈감을 조명한다. ‘외모지상주의는 나빠’와 같은 당연한 말들 너머로 마음의 배경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멀리서 보면 옳은 말이지만, 편안하고 단순한 옳은 말일 때도 많다”며 “그럴 때 서로의 편견 안에서 세대별로 젠더별로 오해나 미움이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애란의 소설은 때로 신문기사나 다큐멘터리보다 더 정밀하고 예리하게 시대를 포착한다. 창작의 출발점을 묻는 말에 그는 “‘자꾸 왜 이 문제에 신경이 쓰이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언제나 미완의 물음표로부터 출발한다”고 답했다. 그는 “소설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복잡한 마음을 비난하기보다 반대로 그럴 수 있다고 승인해주는 것”이라며 “이야기라는 형식 안에서 자기도 잘 몰랐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주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주장이 너무 편하게 느껴질 때 ‘다른 시선은 없나’ 질문하고 바꾸는 과정이 그의 소설을 확장한다. 곧바로 신선한 시선이나 변화가 생기지는 않지만, 그 과정이 천천히 쌓여 축적될 때 비로소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순간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삶의 태도로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근육이 쌓이듯,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지막 수록작인 ‘빗방울처럼’은 가장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작품이다. 원래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작가 8명이 참여한 국제 문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다양성, 그리고 포용과 연대’라는 공통 주제 아래 각 작가의 단편이 묶였다. 더 보편적인 주제나 경쾌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당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전세 사기 사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전세라는 제도부터 외국어로 번역하면 가독성이 떨어졌다”면서도 “그럼에도 제가 방에서 출발한 작가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소재가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이며, 실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만큼 집필 과정은 조심스럽고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작가는 “단순한 재현이나 상황 전달은 기사나 다큐멘터리의 몫이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하며 써 내려갔다”고 밝혔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인 여정이었다. 그는 “소설이 의도한 대로만 써지면 발견이 없다. 그럴 땐 절망하고 헤매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헤맴은 낭비가 아니라 비용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딘가 도착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점에서, 저는 그것을 차비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시절 데뷔한 그에겐 오랜 시간 함께해온 독자들이 있다. 동시에 최근 작품을 통해 그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접한 독자층도 꾸준히 늘고 있다.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 지독한 현실을 유머로 풀어낸 감각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비행운’에서는 청년기의 무력감과 불안을 문장으로 정교하게 구현해 찬사를 받았다. 가족과 청년의 불안이라는 주제는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유효하며, 세대 간 공명을 끌어내는 핵심축으로 작동한다. 10년, 20년의 시차를 두고도 서로 다른 세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때 공감했던 독자들이 여전히 공감해주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김 작가는 “어느 면에선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젠더나 기후 환경 문제는 과거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제가 꾸준히 집중해 온 거주 환경 문제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문장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본질을 품고 있다. 김 작가는 “시대의 풍경은 바뀌었지만 사람 마음의 풍경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며 “세상은 더 윤택해지고 세련됐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마음만큼은 시절과 관계없이 비슷한 듯하다. 그래서 젊은 독자들이 지금 자신의 마음에 20년 전 저의 마음을 포개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대의 문장으로 쓰인 소설은 단지 이야기만 전달하지 않는다. 그 문장 자체에 반응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당분간 약속된 단편들을 마무리하고, 새 장편을 준비할 계획이다. 기존 산문과 새롭게 쓴 글을 엮은 산문집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책이 준비되는 시간에 비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은 훨씬 짧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관심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여느 작가가 그렇듯 조용하더라도 꾸준히, 오래 읽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고 말했다.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 대산읍에서 자랐다.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손칼국수를 만들어 팔던 어머니 사이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이중 하나는 거짓말',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등을 펴냈다. 2013년 서른셋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최연소 수상했다. 동인문학상과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등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달려라, 아비'의 프랑스어판은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상을 수상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