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6년째 이어지는 입법 공백 속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개정안은 낙태 용어 변경,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 중지 허용, 임신중절 허용 한계 규정의 삭제 등을 골자로 한다(표 참조). 생명단체와 의료계는 개정안이 사실상 ‘만삭 낙태’를 허용하고 이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함으로써 생명 경시 현상을 부추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여성계는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는 6년 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동시에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입법적 해법을 2020년 말까지 마련하라고 국회에 주문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를 이행하지 못했고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었다. 이로 인해 법적 기준의 부재가 지속하고 있으며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임신 30주 이상의 후기 임신중절 광고까지 등장하는 등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남 의원 등 11인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도 가능하도록 명시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인공임신중절 허용 한계를 규정한 제14조를 완전히 삭제해 사실상 임신 전 기간에 걸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남 의원은 개정안의 제안 이유서를 통해 “입법 공백으로 인한 여성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임신중지를 위한 의약품과 수술, 수술 후 의료서비스 등에 건강보험 적용, 임신중지 의약품 필수의약품 지정)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한 낙태의 전면적 허용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균형 있는 보장을 요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에 대해 “태아 생명을 종결시키는 수단이자 생명권 보호 측면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다. 약물 복용에 따른 대량 출혈, 정신적 후유증 등 산모의 건강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종교계 및 생명단체 역시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며 “결국 안락사 등 생명 경시 현상을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의 개정안은 현재 발의된 여러 모자보건법 개정안 중 하나이며 법안 심사와 논의 과정에서 여러 절차가 남아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더욱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동시에 존중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깊이 있는 논의와 사회적 숙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