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학이 아닌 자퇴 처리가 됐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저희 집에 맡겨달라”며 일본행을 말렸다. 당시 아들은 태권도 유단자로 리더십이 좋았다. 한국에서 이렇게 잘 지내는 아이지만, 일본에 가면 모든 조건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된다는 걸 아셨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부모가 정말 무지하다고 생각했겠다 싶다.
우리 부부는 일본어가 가능한 성도님 도움을 받아 아이들 입학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일본의 나고야 교육청으로 갔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본어가 안 되는 한국 고등학생이 현지 학교에 입학한 전례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 했다. 보통은 국제학교를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형편에 국제학교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한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역 자원봉사자센터인 ‘보란티아’의 선생님이 도요타시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에 동행해 줄 테니 아이 입학 문제를 함께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일본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처럼 시험을 보고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아들이 한국에서 잘했다고 해도 언어가 안 되면 입학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센터의 선생님은 만나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지고 언어와 학교 공부를 가르칠 테니 믿고 받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셨다. 부모인 우리보다 더 애절하셨다. 우리는 말을 못 하니 하소연도 못 했다. 상담하는 학교마다 “모든 학생이 시험을 보고 들어오는 학교인데 언어가 안 되는 한국인 학생을 허락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거절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끈질기게 학교 문을 두드렸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들을 불쌍히 여겼다. 본인의 학교는 어렵지만 다른 가능한 학교를 알아봐 주고 교장 선생님께 직접 부탁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교는 지역에서 수준이 가장 낮은 곳이었다.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인지라 센터 선생님도 생각하지 못한 곳이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 선택지를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됐다. 먼저 그곳은 국립학교여서 학비가 없었다.
아들은 집에서부터 1시간 남짓 걸려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교실 중앙에 걸린 일장기를 보며, 일본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아들은 온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또래들이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국 친구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아이가 현지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센터 선생님은 방과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아들을 만났고, 일본어는 물론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예습과 복습을 해주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높게 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아들을 살펴주고 계셨다.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누군가가 내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고 계신 것이 느껴져서 걱정이 하나도 안 돼요.”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