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은 노년층에게 특히 가혹하다. 지난 23일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서 만난 박영희(77·여·사진)씨는 폭염 속에서도 여전히 밭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했다. 집 앞의 작은 고추밭을 아침과 저녁마다 찾고 있지만 예년보다 더 강해진 무더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씨는 “이번 주는 비가 와서 좀 괜찮았는데 지난주에는 1시간만 밖에 서 있어도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기승을 부리는 더위를 이겨내려면 적어도 집에 있을 때는 냉방이 필수다. 그러나 저소득층 입장에서는 인상된 전기요금 탓에 냉방기기 사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기요금은 4년 전인 2021년보다 43.5% 올랐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전기요금 부담을 다소 덜 수 있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는 냉·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수혜 대상자다. 1인 가구 기준 연간 최대 29만5200원 한도 내에서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박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해부터 시행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통해 올해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 서비스를 통해 에너지바우처 수급 대상이면서도 사용 이력이 없던 3만2529세대 중 1만8666세대(57.4%)가 새로 혜택을 받았다. 에너지바우처 제도는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 속에서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에너지 취약계층의 사각지대도 크게 줄었다.
올해는 4만7000세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수급 대상 중 노년층(58만3813세대)과 장애인(39만649세대)의 비중이 각각 46.4%, 31.1%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통해 수급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이후로는 자동 신청이 된다. 이정현 에너지공단 지역에너지복지팀 과장은 “한 번만 신청하면 자동 신청이 되도록 해 편의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냉방비 사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한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는 세대당 평균 6만8000원의 냉방비와 31만4000원의 난방비를 별도로 지급했으나 이로 인해 지원금이 주로 난방비에 치우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올해부터는 냉·난방비를 통합해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폭염 일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냉방비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상청에 따르면 일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일수는 2022년 10.6일, 2023년 14.2일에서 지난해에는 30.1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에너지공단은 냉·난방 기기가 없거나 기기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가구에 대한 지원도 병행할 계획이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한국에너지재단과 연계해 에너지 사용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