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망가지기 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입력 2025-07-29 00:30

중국 저장성의 작은 마을에서 1947년 9월 13일에 태어난 리 란주안 저장대 교수는 문화대혁명의 격동기를 거쳐 의사가 됐다. 수많은 전염병과 간 질환이 창궐하던 이 시기에 그는 의학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B형 간염이 퍼져 수많은 이들이 급성 간부전으로 병원에 실려 오는 상황에서도 의사들은 손쓸 방법이 거의 없었다. 간 이식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간이 기능을 멈춰 생명을 잃었다.

리 교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이 회복할 시간을 벌어줄 수만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그를 움직였다. 이 신념에서 시작된 게 1986년 개발된 ‘인공 간 지원 시스템’(ALSS)이다. 이 시스템은 혈장 교환과 흡착, 혈액 투석을 결합해 간 기능을 임시로 대체하고 환자의 간이 자연 회복하거나 이식을 기다릴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획기적인 치료법이다.

리 교수는 이 기술을 특허 내지 않고 전국 300개 이상의 병원에 무상으로 보급했다. 그는 치료의 진보가 특정 의사나 병원의 권리로 국한돼선 안 되며 생명을 살리는 공공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ALSS는 환자의 단기 생존율을 크게 높여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리 교수는 중국공정원 원사와 저장대 의과대학 교수, 감염병 진단 및 치료 국가중점실험실 소장으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끝까지 붙잡고 있던 질문은 이것이다. “간이 망가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예방이야말로 가장 고차원적인 의학”이라며 “간이 완전히 손상되기 전, 혹은 손상이 시작되기 전 조기 개입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유전체 분석으로 간 질환의 고위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조기에 식별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진단 알고리즘은 간 수치와 염증 지표, 체질 정보 등을 종합해 질병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할 수 있다. 실제로 PNPLA3, TM6SF2, MBOAT7 같은 유전자는 지방간과 섬유화, 간암 위험과 연관이 높다는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줄기세포 기반의 간세포 재생 기술과 엑소좀을 통한 조직 회복, 간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독성 테스트는 더이상 실험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간세포를 손상되기 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손상 직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은 지금도 임상 시험 중에 있다. 일부는 희귀 질환 환자에게 실제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간이 아직 침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복잡한 의학 지식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다.

첫째 정기적인 간 기능 검사를 받는 것이다. 혈액검사로 AST와 ALT, GGT와 빌리루빈 수치를 체크하고 의심되는 변화가 있을 때는 영상 검사와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둘째로 지방간과 염증을 악화시키는 고지방·고당분 식단을 피하는 것이다. 술과 가공식품, 과도한 육류 섭취는 간의 지방 침착을 촉진한다. 이는 추후 간 섬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는 운동과 체중 관리다. 간에 좋은 운동은 격렬한 근력 운동보다는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무엇보다 체지방률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넷째는 유전적 위험을 평가하는 유전체 분석이다. 가족력이나 만성 피로, 혈당 이상이 있다면 병원에서 간 질환 관련 유전자 스크리닝을 받아보는 것이 조기 예방의 시작이다. 마지막은 스마트워치,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한 디지털 헬스 도구나 AI 기반의 자가 간 건강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간 피로와 수면, 식습관을 점검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다수 상용화됐다.

간은 ‘말하지 않는 장기’라지만 관심을 두고 정기적으로 살피면 간이 보내는 조용한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리 교수는 1980년대 의료 현실에서 간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우리는 오늘의 기술로 그 시간을 예방의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이 몸을 지키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이다. 당신의 간은 침묵하고 있는가. 지금이 바로 그 침묵에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