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대통령은 왜 아무 말이 없었을까

입력 2025-07-28 00:37

인사청문 정국을 들여다봤다면 ‘이게 뭐지’ 하며 갸우뚱거렸던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한 대통령의 침묵이 내겐 그런 대목 중 하나였다.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 의사를 보고받고도 별말씀이 없으셨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었다. 국회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할 땐 신뢰가 깊다고 하더니, 물러나는 자리에선 침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의 침묵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강 전 후보자가 사퇴 의사를 밝힐 무렵 대통령은 인권 이슈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지난 23일 소득 수준에 따라 색을 달리했던 민생회복 소비쿠폰 카드의 인권 감수성 부족을 강하게 질타했고, 이튿날에는 지게차 가혹 행위를 당한 이주 노동자 사건을 언급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침해”라고 강력대응을 지시했다.

밖으로만 향한 대통령의 말은 ‘국회 업무에서는 사적 지시의 경계가 모호하다’거나 ‘갑질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말과 합쳐지며 새로운 ‘갸우뚱’ 포인트가 되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지명철회는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어찌 됐든 자진사퇴로 민의를 수용한 셈이니 이쯤에서 덮자는 것인가. 민감한 인권 감수성이 왜 유독 보좌관 갑질 논란에선 침묵으로 발현됐는지를 놓고 불편한 해석들이 분분하다.

논란이 확산하는 동안 보좌관들이 주로 글을 써온 페이스북 게시판엔 피해 사례가 하나둘 더해지며 ‘국회판 미투’도 나올 판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본인 갑질이 드러날까 봐 논란을 쉬쉬했다는 말도 공공연했다. 하지만 사태 일단락 후엔 게시판도 잠잠해졌다. 국회 내 갑질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국회인권센터가 설립 3년6개월이 지나도록 피해 사례를 한 건도 공론화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센터는 애초 국회의원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리더의 침묵으로 이번 논란이 종결되는 건 공정하지 않다.

대통령의 침묵은 또 다른 싸움도 만들어 내고 있다. 강성 민주당 커뮤니티에선 강 전 후보자 사퇴를 공개 촉구한 박찬대 의원을 향해 “동료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반대 진영에선 박 의원이 대통령을 위해 총대를 멨다는 옹호론이 형성되며 그들과 다투고 있다. 수십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명 철회’를 요구해도 용산 심기경호에만 급급했던 여권이다. 인사청문회가 국민을 위해 공직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한 전투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사이 정작 피해자들은 논의에서 사라졌다. 내부의 유대와 이해가 윤리를 덮는다면 그 정당은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이익조합과 다름없다.

인사 논란은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의 구설 문제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태를 기획된 사건처럼 보인다며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고 주장했었다. “예쁜 된장녀들에 걸려들면 패가망신하기 십상” 등의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인물이 정부의 인사 기준을 정하는 주무부서의 장이다. 하지만 여권은 이재명정부를 향한 인사 실패 프레임으로 확산할까 봐 속병만 앓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 때 “특권적 지위와 특혜가 사라진 공정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며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그 간절한 염원에 응답하겠다”고 했었다. 행동 없는 말은 금방 휘발된다. 이런 논란들이 반복되면 여권을 향한 콩깍지는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정부도 맨눈 앞에 서야 할 텐데, 그때는 침묵할 기회가 없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